스트리밍 전쟁[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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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지난해 11월 미국 NBC는 ‘스트리밍 전쟁(The Streaming Wars)’이란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앞세운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워너미디어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경쟁관계를 다뤘는데, 각 기업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스타크, 라니스터 등의 가문으로 비유했다. 지난해 8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할리우드 싹쓸이에 나선 넷플릭스는 왕국을 삼키려는 ‘백귀(White Walkers)’로 묘사됐다.

▷스트리밍은 인터넷에서 영화나 음악 등을 다운로드 없이 실시간으로 즐기는 기술이다. 전송되는 데이터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처리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 서비스를 통해 영화나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는 1억5000만 명에 달한다.

▷디즈니와 애플이 넷플릭스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다음 달 애플이 ‘애플TV+’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월 4.99달러 수준으로 책정하자 디즈니도 당초 월 6.99달러였던 ‘디즈니+’의 요금을 월 4.72달러로 대폭 할인한 것. 가장 낮은 넷플릭스 베이직 요금(월 8.99달러)의 절반 정도다. 내년에는 워너미디어의 ‘HBO맥스’와 NBC유니버설의 ‘피콕’도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든다.

▷스트리밍 전쟁은 ‘죽기 아니면 살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오랜 기간 각 기업들이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인수합병을 통해 작품과 지식재산권을 확보해 왔는데 이제는 가입자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으로 넘어간 것이다. 좋은 콘텐츠만 갖고 있다면 경쟁자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저가 출혈공세를 보면 시장 지배자가 되지 못하면 죽는다고 보는 쪽이 더 많은 것 같다.

▷미국의 장난감 회사 ‘토이저러스’는 ‘가장 저렴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을 공급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한때 세계 최대의 완구 유통업체로 등극했지만, 이후 아마존 월마트 등 자금력이 더 큰 경쟁자가 나오면서 내리막을 걸었고 2017년 파산 신청을 했다. 전문가들은 스트리밍 시장의 출혈 경쟁이 거의 원가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즐겁게 보고 있는 저 영화 뒤에서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스트리밍#넷플릭스#디즈니#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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