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후를 위한 당부[동아 시론/임경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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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병든 부모와 요양원 응급실 전전
불효자 낙인찍힐까 쉬쉬할 수밖에 없어
현대사회서 가족만이 노인 간병 어려워져
2050년 되면 국민 셋 중 하나는 고령자
그럼에도 주변 시선에 문제 거론 터부시
노인 돌봄이란 화두 양지로 나오게 해야

임경선 작가
임경선 작가
지난 3년여 동안 양가 부모님 세 분의 장례를 치렀다. 정확히는 장례만 치른 건 아니었다. 그 전 몇 년은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과 응급실의 나날이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 느꼈던 막막함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그 막막함은 노인 간병과 돌봄에 관한 고민을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공유하기 힘든 분위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한국인에게는 뿌리 깊은 효사상이 배어 있기에 부모님은 어디까지나 ‘모셔야’ 하는 존재였다. 늙고 병든 부모님을 이른바 ‘시설’에 보내는 자식은 불효자로 낙인찍히기 마련이었다. 요양시설의 도움을 빌린 사실도 주변에는 알리지 않고 쉬쉬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노인의 간병과 돌봄을 전적으로 도맡는 일이 점점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26년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50년이면 국민 3명 중 1명(39.8%)이 고령자가 될 것이다. 10년 새 전국 요양병원 수가 5배 넘게 급증한 사실도 이러한 추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죄책감에 짓눌려, 가장 절박하게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터부시한다.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응급전화에 신경이 예민해져 깊이 잠들지 못했던 숱한 밤들과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던 순간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가령, 요양병원이란 곳은 장소의 특성상 미리 예약을 할 수 없다. 상황이 닥쳤을 때 그제야 알아볼 수밖에 없다. 여행지 호텔 추천을 바라듯 사람들에게 어디가 괜찮으냐 물어보기도 난감한 사안이라 대개는 직접 ‘맨땅에 헤딩’으로 찾아본다. 막상 가보니 창문도 없는 방에 침대 사이 간격도 거의 없이 환자분들이 일렬로 누워 있던 시체안치실 같은 곳을 본 적도 있다. 병든 부모를 남의 손에 맡기는 자식의 죄의식을 묘하게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은 곳도 있었고, 당장 지난달 한 요양병원의 화재사건에서 보듯 안전관리나 위생관리가 미흡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괜찮지 않을까 싶은 곳은 빈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설에 대기를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부모님의 들쭉날쭉하는 병세에 따라 자식들이 긴장 상태로 24시간 대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요양시설을 알아보는 일에 하도 고충을 겪다 보니 어느 날은 그만 울컥해서 그간 추려둔 요양병원 리스트를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 때 덜 고생하길 하는 마음에서였다. 분명 누군가는 ‘부모님을 시설에 모시는 게 자랑이냐’며 비난할 거라 각오했다. 한데 웬걸, 그 글은 내가 올린 모든 게시물 중 가장 많은 ‘관심글’ 지정을 받았다. 다들 겉으로는 말 못 하면서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는 문제임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읽는 부모님 세대의 독자분들이 느낄 서늘함과 서운함도 헤아려 본다. 하지만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을 직시하고 그간 터부시한 주제를 공론화하고 싶다. 다양한 입장에서 의견을 보태야 좀 더 섬세한 대처를 해나갈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환경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가족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양질의 요양시설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현재도 요양병원 등의 시설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더러 있지만 향후 급속도로 증가할 고령인구나 요양시설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신뢰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요구될 것이다. 연이어 상을 치르면서 유가족 입장에 서서 장례 절차를 이끌어주고 조언해주는 장례지도사의 역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긴박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가족의 의료, 간병, 돌봄 문제에 대해 차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해주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한 사람의 요양보호사가 스무 명 가까이를 돌봐야 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이 시정되고, 돌봄 노동의 처우를 개선시키는 일도, 노인 돌봄이라는 중요한 화두가 사회의 양지로 나오게끔 하는 데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노후를 위한 당부이기도 하다.
 
임경선 작가
#노후#노인 간병#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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