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의 산물 ‘24절기’…“가을은 기필코 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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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16일 1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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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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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 차례의 태풍이 용광로 같던 열기를 잠시 잠재웠지만 무더위가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다. 이 폭염 중에 지금이 가을이라고 말한다면 철모르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절기 상 지금은 분명 가을이다. 지난주 입추(立秋)가 지났고 다음 주에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를 맞으니 이미 가을은 한창 진행 중이다.

고대인에게 날짜를 계산하는 손쉬운 방법은 일정한 주기를 갖고 하루하루 모양이 변해가는 달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달 모양에 따라 날짜를 세는 방법이 음력(太陰曆)으로 발전했다. 음력은 날짜의 흐름을 쉽게 알게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지는 못한다. 계절은 태양의 운동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24등분하여 계절 변화를 표시한 것이 24절기다. 그래서 24절기는 양력(太陽曆)의 날짜와 대체로 맞는다. 음력은 달의 삭망(朔望) 주기에 따르고 양력은 해의 공전(空轉)주기에 따르므로 한해의 길이가 각각 354일과 365일로 차이가 난다. 음력에서 모자라는 11일을 윤일(閏日)로 삽입해 양력의 길이에 맞추고, 계절 변화를 나타내는 24절기를 보완해 발전시킨 달력이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음력으로 불리는 이 태음태양력은 이슬람권에서 사용하는 순(純)태음력과는 다르다. 이슬람력에서는 아랍어로 ‘힐랄(Hilal)’이라 부르는 초승달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 지역마다 달뜨는 시간이 달라 매달 시작일도 나라마다 다르다. 사막이 대부분인 중동의 이슬람권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농경사회에서만큼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력에 양력 요소를 보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 도입된 24절기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체감하는 날씨와 차이가 난다. 원래 24절기는 중국 주(周)나라의 황하(黃河)지역 날씨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한반도의 계절 변화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4절기가 잘 맞지 않게 됐다. 기후학적으로 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낮아졌을 때를 가을로 보는데 기후학적 가을의 도래가 1970년대에 비해 최근에는 보름 이상 늦춰지고 있다. 그래서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가 연중 가장 더운 날이 되어 버렸다. 원래 입추와 처서 사이는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 정상인데 요즘은 입추 후 보름이 지난 처서에도 기온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에게 24절기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의 산물이다. 망종(芒種)에는 반드시 씨를 부렸고 상강(霜降)에는 꼭 추수를 했다. 비록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그 엄정한 권위가 흔들리고 있지만 수 천 년을 쌓아온 지혜는 여전히 명징한 빛을 발하고 있다. 더위가 극에 달한 때가 입추인 것은 마치 양(陽)이 극에 달할 때 음(陰)이 시작되는 태극의 모양과도 같다. 쾌락이 극에 달할 때 패망의 원인이 배태되고, 절망의 심연에 빠졌을 때 새로운 재기의 희망이 솟는 것과 같다. 조금 천천히 오더라도 가을은 기필코 오고야 마는 것처럼 견디기 고통스러운 폭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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