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 위의 어처구니[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18〉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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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그 이유를 모르겠다. 배를 오래 타다 보면 바보가 되는가 보다. 1980년대 필자가 승선하던 시절, 바다 위이기 때문에 이해될 수 있는 실수가 드물기는 하지만 일어났다.

하루는 갑판수(목수)에게 행사에 쓸 12인용 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작업장에 가보니 열심히 제작 중이어서 마음 놓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전화로 낭패가 났다고 전해왔다. 1등 항해사가 와서 도와주어야 할 정도의 사안이라고도 했다. 다시 작업장에 가보니 웬걸, 상을 너무 크게 만들어 문 밖으로 들어낼 수가 없었다. 다 만들고 나서 갖고 나올 생각은 못 한 것이다. 배의 모든 공간은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고 출입구는 작게 만들어져 있다. 상은 그날 저녁에 사용해야 했다. 나는 두 동강으로 잘라 밖으로 끄집어낸 뒤 다시 합치라고 했다. 베테랑 갑판수의 실수는 지금도 의아하다.

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하루는 선내에 벌레가 많아 분무기로 소독을 하라고 지시했다. 며칠 후 사주장(조리장)이 찾아왔다. 밥을 했는데 기름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쌀 창고도 소독을 했는데 소독약의 기름기가 포대 안으로 스며들어 냄새가 났다. 20여 포대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 다 버릴 수 없어서 영향을 작게 받은 것은 밥을 지어 먹었다. 끼니때마다 사람들이 냄새가 난다고 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 밖에 선상에서 겪은 일화는 많다. 하루는 선장이 전보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Dear Captain, Is COW available in your vessel(선장님, 선박에서 COW가 가능한가요)?” 선장은 ‘COW’를 소라고 이해하고, 소를 실을 수 있는 장비는 없다고 답했다. 회사에서는 다시 알기 쉽게 “Crude Oil Washing(원유 운반선에서 원유로 선창을 청소하는 방법)이 가능한가요?” 하고 물었다. 선장은 이때에서야 가능하다고 답했지만, 낯이 뜨거워졌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는데 원유선에서 세정하는 방법을 몰랐던 선장의 무지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다.

파나마 운하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아 만나는 낭패도 있었다. 선박은 허용 흘수(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까지 짐을 실을 수 있다. 선장은 운임을 더 많이 받으려고 최대한 많은 짐을 싣고자 한다. 그러면 흘수가 깊어진다. 초심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우리나라에서 미국 동부로 갈 때 파나마 운하 통과를 고려하지 않고 짐을 너무 많이 실어버리는 것이다. 파나마 운하는 해수가 아니라 담수다. 바다에서는 몸이 쉽게 떠있지만 강에서는 몸이 가라앉는 것과 같이 선박이 파나마 운하로 들어오면 15cm 정도 더 가라앉게 된다. 부산항을 출항할 때 허용 흘수 9m로 짐을 싣고 떠난 선박은 파나마 운하에서는 9m 15cm까지 가라앉게 되는데, 만약 파나마 운하의 허용 흘수가 9m라면 좌초 사고가 나게 된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선장은 부랴부랴 짐을 내려 배를 가볍게 하려고 난리를 치게 된다. 짐을 실을 때 이를 고려해 흘수에 15cm의 여유를 두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수들을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반성하고 교훈 삼으면서 한국 선원의 자질도 향상되고 한국 해운도 발전해 나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선상#배#선박#갑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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