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5급이면 어떻습니까? 장관 출신이 감투도 아니고…”[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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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귀향한 이동필 전 농식품부 장관

우리 농촌 소멸의 딜레마는 무너지는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조차도 자기 자식에게는 농사를 권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사 지어보니 참 괜찮더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나라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 제공
우리 농촌 소멸의 딜레마는 무너지는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조차도 자기 자식에게는 농사를 권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사 지어보니 참 괜찮더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나라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 제공
이진구 논설위원
이진구 논설위원
《지난달 23일 오후, 기자를 맞아주는 그의 손에는 흙 묻은 호미가 들려 있었다. 일요일이지만 아침부터 밭을 고르고 있었다고 한다. 집 앞에 펼쳐진 2800여 평(약 9260m²)의 땅에는 직접 심은 깨 콩 블루베리 등 온갖 작물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64)은 “실제 농사를 지으며 살아보니 우리 농촌 현실이 장관일 때 보던 것보다 훨씬 절박했다”며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경북도 5급 시간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9월 장관 퇴임 바로 다음 날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으로 내려왔다. 》

―직접 농사를 지으며 본 농촌 현실이 장관 때 생각했던 것과 괴리가 크던가.

“저 집 한번 봐라. 빈집이다. 그 앞집도 폐가고…. 노인들만 사는 동네는 요양원 비슷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농식품부 장관 등을 하며 30여 년간 농업 농촌에 대해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연구하고 정책을 해왔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농촌 현실을 보며 자괴감이랄까, 책임감이 들었다. 장관에서 물러났다고 여기서 콩이나 심고 있어도 되나….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쓰러져가는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경북도에서 시간제 공무원을 뽑는다고 해 지원했다.”

※그는 올 1월부터 도 농업정책과 소속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5급)으로 일하고 있다. 2년 계약직으로 주 3일 근무하고, 출근하지 않는 날은 농사를 짓는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너무 세세한 일까지 잔소리를 하면 후배 공무원들이 힘드니까…. 큰 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는 한정된 예산, 인력, 조직을 정말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사람이나 경제는 물과 같다. 한곳을 깊고 크게 파면 그리로 모인다. 사람을 강하게 끌어들일 중심지를 만들고, 주변에 배후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런 식으로 산발적으로 만들다 보니 시너지 효과를 못 내는 게 많다.” (예를 들면 어떤 식인가?) “의성 금성면에 군립인 조문국(召文國)박물관(사업비 180억 원)이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 이 지역에 있었다는 작은 나라다. 단촌면에는 최치원문학관이 있는데 여기도 약 200억 원이 들었다. 이렇게 작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흡인력이 약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거다. 이런 점을 조언해 주려고 한다.”

※조문국박물관과 최치원문학관은 차로 약 40분이나 떨어져 있다.

―농촌 소멸 현상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다 따로 움직이다 보니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이 소멸된다고 난리인데 수도권에 또 신도시를 만들면 소멸을 가속시키지 않겠나. 지방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예산을 표 되는 곳에만 쓰는 것도 문제고…. 시골에는 청년들이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다니?) “40, 50대면 청년인데 면에 열댓 명 정도 있다. 철도 부지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거기가 그들 회관이다. 그래 놓고 너희가 농촌의 미래라고 하면 되나.”

※단촌면 인구는 약 2300명이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시설들이 많던데….

“요 앞에 있는 단촌초등학교가 모교인데, 학생 수는 30명 정도 된다. 올 2월 졸업생이 한 명이었는데 각종 상과 장학금 10여 개를 혼자 들락날락거리며 다 받더라. 올해는 신입생도 없다. 그런 학교에 2층짜리 체육관을 지어줬다.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이란 게 있는데 그 일환으로 면사무소 앞에 2층 건물을 지었다. 근데 용도가 헬스장이다. 나중에는 다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농촌이 이렇게 어려운데 투자의 우선순위가 체육관이나 헬스장일까. 안타깝더라. 이 논설위원도 전직 장관이 사무관 됐다는 얘기보다 지방 소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농촌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 있나.

“당장 획기적으로 농촌 인구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그 대신 귀농·귀촌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귀촌을 위해 도시에 있는 집을 팔 경우 양도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식으로…. 세 부담 때문에 집을 못 팔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나. 1가구 2주택 보유세도 시골에 장만한 집은 제외해 준다든지…. 주민들도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고 먼저 함께 잘 살아보자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애써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지역에 아는 사람이 없지 않나. 특히 경상도는 아주 보수적이라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 별로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지역 사회가 관용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발전은 그렇게 모이는 과정에서 생긴다. 사람이 불편한데 누가 들어오겠나.”

―농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이 된다면 농촌 현실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잘 안되는 이유가 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규제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술 분야만 해도 무슨 규제가 그렇게 복잡하고 많던지…. 복분자로 막걸리를 만드는 데 거의 10년 걸렸다.” (복분자로 술을 만들면 안 되나?) “1998년 국무총리실 파견 기간에 주류 쪽 규제 해소를 맡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술 시장은 온통 규제 덩어리다. 당시 복분자는 한약재로 분류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원료로 못 쓰도록 했다. 약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도대체 얼마를 먹어야 위험한지 과학적 기준을 보여 달라 했더니 별 기준도 없었다.”

―그래서 규제가 금방 풀렸나.

2014년 7월 18일 쌀 관세화 결정을 발표하고 있는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동아일보DB
2014년 7월 18일 쌀 관세화 결정을 발표하고 있는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동아일보DB
“식약처와 싸워서 일단 복분자를 식품원료로 쓸 수 있게 한 게 첫 단추였다. 다음은 국세청과 싸워야 했다. 복분자로 술을 만들려면 국세청에 주류 제조와 판매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술에 대해 뭘 안다고 관여하나?) “이 사람들은 술은 알코올이라 해롭기 때문에 제조와 판매를 국가가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이면에 과세가 있고…. 술 자체를 못 만들게 하지는 않지만 시설규제를 통해 사실상 못 만들게 한다. ‘발효조 크기는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전통주는 대부분 시골의 조그만 업체에서 만드는데 이런 대형 시설을 어떻게 설치하나. 택배나 온라인 판매도 못 하게 했다.” (배달 판매도 못하게 했다고?) “우편으로 팔면 청소년들이 사서 마셔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대형 주류업체도 아닌 영세업체가 전국에 매장을 세울 수도 없지 않나. 하지 말라는 얘기지. 한 3년 싸웠더니 1회 주문에 5병만 허가해 주겠다고 하더라. 또 몇 년을 싸워 20병으로 늘렸다. 복분자 막걸리가 식약처부터 시작해서 우편 판매 허용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내가 복분자 막걸리 전도사라고 불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술 분야에서 가장 개선돼야 하는 게 뭔가.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를 만드는 주정(酒精)을 대한주정판매라는 회사가 독점으로 판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은 이곳에서 주정을 사와 주류회사가 가공해 파는 것이다. 민간 회사인데 나라에서 술의 탈세 방지와 투명화를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독점으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회사를 국세청 퇴직 관료들이 휘어잡고 있다. 독점 판매 구조가 깨진다면 좀 더 다양한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거다.”

※현 대한주정판매 이순구 사장은 서울 성동세무서장 출신이다. 국세청 출신들이 퇴직 후 한국주류산업협회, 진로발효 등 주정회사, 삼화왕관 등 병마개 회사 등 술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 임원 등 주요 보직으로 가는 것은 만연한 현상이다.

―현 64대 이개호 장관까지 역대 농림부 장관 중 재임 기간 1년 이하가 38명이나 된다. 제대로 된 농정을 펴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나.

“나는 박근혜 정부 시작부터 3년 반을 했는데… 오래하다 보니 오동필이라고 부르더라. 5년 할 거라고. 박근혜 순장조라고도 하고…. 농정은 긴 호흡으로 살펴야 하는데 장관의 재임 기간이 지나치게 짧은 게 문제긴 하다.”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라도 있었나.) “특별한 인연은 없는데… 내가 왜 장관이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최순실이 추천한 건 확실히 아닌 것 같고. 하하하.”

※61대 장관인 그는 건국 이래 최장수 농림부 장관이다. 9대 윤건중 장관은 한 달 반, 45대 김양배 장관은 석 달 만에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이 농업과 관련해 뭘 당부하던가.

“임명 때도 그렇고, 해마다 연초에 청와대에서 떡국을 먹는데… 6차 산업 잘 해달라고 했다.” (6차 산업?) “농업 분야는 그동안 생산, 증산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생산이 늘다 보니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는 등 복잡한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소비를 창출하고, 일자리도 만들자는 거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약했다. 오로지 생산만 이야기했지….”

―거처하는 별채에 사원재(思源齋)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샘의 근원을 늘 생각하라는 뜻)에서 따온 건데, 사람이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붙였다. 우리가 살면서 신세를 지지만 또 금방 잊지 않나. 필요가 없으면 다른 데 가서 또 줄을 서고…. 도리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누굴 잊지 말자는 건가. 박 전 대통령을 말하나.) “다 포함해서….”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이동필#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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