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게 하는…‘덕질’과 애정으로 모십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7일 16시 31분


코멘트
요즘 행사 기획 일에 미쳐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돈도 안 되는데, 눈만 뜨면 생각나고 하고 싶다. 이 일은 사랑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한다. 첫째는 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그래서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순간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는 것. 그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에 우리는 늘 매료된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 곧 그 이상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소개팅으로 치면 애프터이고, 작품으로 치면 속편이다. 행사는 바로 그 속편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나는 판을 짜고, 주인공을 모셔온다. 그들은 유명한 창작자일 때도 있고, 평범한 내 친구일 때도 있다. 유명인을 섭외할 경우, 친구들은 신기한 듯 묻는다. “아는 사이야?” “아니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 보냈어.” “어떻게 섭외했느냐”고 묻는다면 다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나는 당신 작품의 이런 점이 참 좋은데, 이걸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 걸요. 그 사람들을 위해 나랑 뭔가를 해볼래요?’

이런 ‘들이댐’은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도 좋은 거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에게 기분 좋은 응원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행사 공간이 6평 남짓한 내 작업실이라는 거다. 초대할 수 있는 손님은 많아 봤자 15명. 교보문고에서 사인회 열면 수백 명이 줄 서는 작가님을 이 작은 공간에 초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된 음향시설도 없으면서 좋아하는 뮤지션을 섭외할 수 있을까?

사람을 움직이게 하려면 상대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가진 게 없다. 그래서 자주 궁리했다. 그 사람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살면서 한 번도 받진 못했지만 마음 깊이 듣고 싶었던 제안에 대해서. 내가 그걸 건넨다면, 그 사람이 여기에 올까? 물론 독심술사가 아니라 자주 실패하겠지만,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다 보면 놀래는 위로를 주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했고, 감사하고 귀여운 답변들이 쌓여가는 중이다. 하지만 결국엔 피해갈 수 없는 얘기, 그러니까 행사 기획과 관련된 돈 얘기를 해야 했다. 1인당 참가비를 얼마씩 걷어도 푼돈이긴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서 주인공과 기획자가 돈을 나눠야 했다. 어떤 날엔 ‘공간 사용료를 제외한 모든 돈을 내가 ’덕질하는‘ 창작자분들에게 드릴거야’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엔 홍보하고, 모객하고, 포스터 디자인하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서 ‘한 번 행사할 때 이 정도는 벌어야, 지치지 않고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었다. 그렇게 머리 싸매고 있자 밴드를 하는 동생이 조언했다.

“일단 좋은 걸 만드는 게 중요해요. 돈 나누는 것도 중요지만, 계약관계는 최소로 정리한 뒤 잊어버려요. 좋은 콘텐츠 만들기에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결과적으로 파이도 커지면서 나눌 돈도 들어오더라고요.”

밴드가 해체되며 위기를 맞고, 새로운 사람들과 ‘으쌰으쌰’ 하더니 어른이 되었나 보다. 잊지 말아야지.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