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훈]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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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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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1974년 간행)와 ‘우상과 이성’(1977년) 등의 저서로 1970,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에게 중국과 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퍼뜨렸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 민주당은 리 교수를 ‘실천하는 지성’이라 평가했지만 그는 ‘주사파’가 활개 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게 만들었다. 개인숭배를 극대화한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은 중국에서도 막중한 오류였다는 평가를 내린 지 오래다. 문화혁명을 좋게 평가한 그의 글에 자극받은 국내 운동권 일부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주사파를 형성했다.

▷많은 주사파들이 모여있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하다 전향한 이동호 씨는 2005년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라는 글에서 ‘그는 사실과 선전을 구분하지 못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속아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저주했던 어리석은 남자였다’고 규정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2006년 ‘비평’이라는 잡지에 ‘그는 시장 맹(盲)과 북한 맹을 만들어내 우리 시대를 미몽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노선을 접지 않았다. 2007년 방북했을 때 북측의 권호웅이 그에게 술을 권하며 “상황이 복잡한 때(1994년 1차 북핵 위기) 리 선생이 민족적인 선의의 글을 쓰신 것을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다. 남측 잡지에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을 봤다. 붓을 놓으면 안 된다”라고 인사하자 그는 “20, 30년 길러낸 후배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 내 건강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술을 받았다.

▷그는 2005년에 펴낸 자서전 ‘대화’에서 ‘내가 살아온 75년은 최근 몇 해를 제외하면 한 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고 규정했다. 햇볕정책을 편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을 제외하면 전부 힘든 시절이었다는 의미다. 그는 북한과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비판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타계하자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로 온 국민이 북한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에도 일부 세력은 그를 다시 치켜세우려고 한다. 종북(從北) 세력인 ‘리영희 키즈(kids)’는 도처에서 상황 반전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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