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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코스엔 악마가 살고… 가장 빠른 15번 코스도 ‘135km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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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코스엔 악마가 살고… 가장 빠른 15번 코스도 ‘135km 제한’

김재형기자 입력 2018-01-01 03:00수정 2018-12-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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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D-39/테마로 본 평창올림픽]경기장의 비밀들―슬라이딩센터 《 올림픽에서는 선수의 육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최첨단 시설과 장비, 경제, 문화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발휘된다. 올림픽의 다양한 측면을 테마별로 살펴본다. 》
 

평창올림픽의 해, 도약 한국의 꿈이 솟는다 평창 올림픽의 해가 밝았다. 1일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D―39’가 되는 날이다.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대에서 국내 유일의 노르딕복합 국가대표 박제언이 힘차게 하늘을 날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 자원봉사자, 운영요원 등의 얼굴 사진 800여 장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구성했다. 겨울올림픽 역대 최다인 총 102개의 금메달이 걸린 평창 겨울올림픽은 2월 9일 개막해 25일까지 열린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8-4-8’ 프로젝트(금메달 8, 은메달 4, 동메달 8개)로 종합 4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평창=장승윤 tomato99@donga.com·김재명 기자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9번 코스(구간)엔 악마가 산다. 썰매 종목 선수들에게 “한계를 극복하라”고 독촉한다. 이들의 메달 색을 차갑고 냉정하게 결정지을 악마다.

지난해 2, 3월,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로 루지와 봅슬레이, 스켈레톤 월드컵이 강원 평창군의 이곳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렸을 때다. 16개 구간으로 이뤄진 이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유독 9번 구간을 지날 때 벽에 부딪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벽이 수직에 가까운 데다 길이까지 짧아 썰매가 달려오던 관성과 원심력을 견뎌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곧이어 등장하는 10번 구간은 ‘직선처럼 보이는 곡선’ 형태라 선수들의 주행을 더 어렵게 했다.

대회 기간 경기를 생중계하는 외국 중계진은 “저 코스에서 부딪치면 안 되는데 또 속도를 갉아먹습니다”를 연발했다. 이후 외신들은 평창 겨울올림픽 썰매 종목의 승부처로 이 구간을 소개했다. 이 구간에 ‘악마의 코스’란 별명이 붙여졌고 덩달아 평창 슬라이딩센터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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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악명’은 이곳의 설계자인 대림산업 최태희 현장 소장(52)에게 영광으로 기억된다. 안전상의 문제가 없는 한 경기장의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는 건 곧 트랙 설계자의 자부심이 되기 때문이다. “썰매 종목 각 국제 연맹도 트랙을 설계할 때 미로 같은 구간을 몇 개 넣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구간은 설계자가 마법을 걸어놓은 구간이라 할까요. 여기가 주목받으면서 속으로 ‘(선수들이) 드디어 마법에 걸렸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평창 슬라이딩센터 트랙이 완성된 2016년 2월 이후 1년여 만이었다. 세계에선 19번째이자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이곳 썰매장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남모르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스타팅하우스와 피니시하우스를 포함해 총 7개의 시설물로 구성됐다. 트랙은 스타트 연습장까지 포함해 총 길이 2018m에 폭 1.5m. 트랙 내부는 콘크리트와 그 밑에 냉각 배관 수천 개가 깔린 모습이다. 배관으로 냉매인 암모니아가 순환하면 콘크리트의 온도가 떨어지고, 이곳에 물을 뿌려 얼음이 깔려 있는 경기장(FOP)을 조성한다. 썰매의 속도가 절정에 달하는 15번 구간의 최대 속도는 시속 134km에 이르도록 정교하게 설계됐다. 국제 규정상 안전상의 이유로 소치 겨울올림픽 이후 지어지는 썰매장의 최대 시속은 135km를 넘지 못한다.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대규모 공사 끝에 지어졌다. 그러나 공사 기간은 다른 곳에 비해 무척 짧은 15개월에 불과했다. 이곳 공사에 사용한 철근과 배관의 무게만 450t이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려면 20개월 이상이 필요하다. 2014 소치 올림픽 슬라이딩센터 건설엔 20개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선 30개월이 걸렸다.

“이래저래 공사에 필요한 절차가 지연되면서 우리에게 할애된 시간은 너무 짧았어요. 2013년 12월에 첫 삽을 뜨고 난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사전 승인을 받을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겁니다. 당시 썰매 종목만 일본에서 치르자는 ‘분산 개최’ 논란도 일어서 마음고생이 심했죠.”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기존 방식대로 공사를 진행했다간 마감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먼저 산을 깎아 경기장의 외형을 다지는 부지 조성(경기장 하부 기초건설)과 이곳에 들어설 트랙 건설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토록 했다. 구간별로 부지가 조성될 때마다 완성된 트랙을 길이 12m 단위로 차에 실어와 얹었다. 기존 썰매장 공사는 부지 조성이 다 끝난 뒤에야 트랙을 건설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트랙 건설에 신(新)공법을 도입했다. 트랙 건설에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작업은 뼈대인 ‘지그(Zig)’를 만들고 여기에 냉각 배관을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예전에는 지그를 일일이 사람이 휘고 여기에 배관을 납땜해서 붙이는 등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에 쓰인 지그의 수는 약 1200개. 지그 한 개에 적게는 30개에서 많게는 70개의 냉각 배관이 붙는다. 즉, 지그 하나를 만드는 시간과 이 지그에 배관 하나를 결합하는 과정을 각각 1분씩이라도 단축하면 최소 620시간(1200분+3만6000분)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다 기계화했습니다. 각 코스에 적합한 각도로 휘어진 지그를 레이저 커팅 기계로 잘라서 만들었죠. 그리고 그 지그엔 냉각 배관을 쉽게 걸 수 있는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배관을 고리에 걸면 이젠 사람이 직접 용접할 때보다 10분의 1가량으로 시간이 주는 자동용접기를 사용해 붙였습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이제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거의 다 마쳤다. 조경과 일부 부대시설 정돈 작업이 남은 상태. 처음 부지 조성을 시작할 때부터 ‘악마의 9번 코스’란 별명이 붙기까지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2013년 설계를 할 때 합법적(?)으로 한국 국가대표팀에 도움을 주려고 국내 코치진의 의견을 받아 트랙의 초반 코스를 많이 휘어지게 했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썰매 선수들은 스타팅 기록이 유럽에 비해 좋지 않아 그게 유리하다는 의견을 따른 거죠. 그런데 지금은 스켈레톤의 윤성빈이 세계 최고의 스타트 기록을 내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웃음)”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평창 올림픽#2018#슬라이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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