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덩치 커져가는 아이… “마음 놓고 맡길 곳 있었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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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의 엄마입니다]<上>‘엄마 3명의 하루’ 동행취재

손 꼭 잡은 모녀



1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중학교에서 발달장애 1급인 딸 선혜(가명·15)의 하교를 돕기 위해 엄마 변은정(가명·47) 씨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손 꼭 잡은 모녀 1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중학교에서 발달장애 1급인 딸 선혜(가명·15)의 하교를 돕기 위해 엄마 변은정(가명·47) 씨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70명을 심층 설문조사했다. 평생 돌봐야 할 처지를 생각할 때 힘에 부친다는 답변이 나왔다. 해피엔딩일 것 같은 영화 ‘말아톤’의 실제 모델인 엄마 박미경 씨(56)는 아직도 아들의 자립을 위해 온종일 조바심을 쳐야 한다.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고군분투는 장애인 복지예산 2조 원 시대를 맞는 내년에도 계속될 듯하다. 장애인 엄마의 하루는 얼마나 힘이 들까. 》

정부의 내년도 장애인 복지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조 원에 달한다. 2013년부터 연평균 20% 이상씩 늘려온 결과다. 장애인의 살림이 좀 편해질 법하지만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천근만근이다.

본보와 푸르메재단이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70명을 설문조사했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낯선 이들이 던지는 생각 없는 한마디에 상처를 입었고 자녀가 혼자 생활해 나갈 수 있을지 늘 걱정이었다. 10년 전 개봉해 화제가 됐던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엄마 박미경 씨(56)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 씨는 재작년에 아들 배형진 씨(32·정신지체 2급)를 경기 성남시의 한 장애인 생활시설(그룹 홈)에 맡기고 자신은 강원 원주시의 친정에 머물고 있다. 나중을 위해 아들이 홀로 사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박 씨와 아들의 물리적 거리는 100km. 박 씨는 낯선 곳에서 불안해하는 형진 씨를 위해 온종일 전화기만 붙들고 있다.

장애인의 부모 대부분은 평생 자녀를 보살핀다. 이들은 박 씨의 어제나 오늘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장애인 부모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엄마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10일 오후 걷지 못하는 뇌병변 1급인 딸 아름이(가명·10)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 김정덕(가명·45) 씨가 딸을 안고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10일 오후 걷지 못하는 뇌병변 1급인 딸 아름이(가명·10)의 재활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 김정덕(가명·45) 씨가 딸을 안고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아이 둘러멘 강행군 10년

10일 오전 7시 반 서울 은평구의 한 빌라. 1층까지 계단 40여 개. 아름이(가명·10·뇌병변 1급) 엄마 김정덕(가명·45) 씨가 집 밖을 나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관문이다. 김 씨는 아름이를 한쪽 어깨에 올렸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걷고 서기를 반복했다. 고통스러운 소리가 나올까 봐 입술을 앙다물었다. 가까스로 아름이를 차에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김 씨의 입술에는 잇자국이 선명했다.

이른 아침부터 김 씨가 찾아간 곳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한 대학병원. 아름이의 재활치료를 위해서다. 성장기 장애아동은 재활치료를 조금만 게을리해도 활동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아름이는 많게는 하루에 병의원 세 곳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는다. 그런데도 2, 3년마다 새 병원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 그래도 아름이 몸에 수술 자국만 남지 않는다면, 섬이라도 찾아가겠다는 것이 김 씨의 각오이다.

오전 9시 반. 아름이를 학교로 보낸 김 씨는 고장 난 휠체어를 고치기 위해 강서구의 한 장애인복지관으로 향했다. 김 씨의 한 달 생활비는 90만 원. 김 씨는 쉴 시간을 쪼개 싼값에 수리가 가능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낮 12시 40분. 한시도 쉬지 못한 채 김 씨는 수업이 끝난 아름이와 경기 성남시 분당의 재활치료센터로 향했다. 차로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중증 장애아동도 배울 수 있는 언어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얘기를 듣고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하루를 10년간 반복했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생긴 지도 오래다. 이제는 불면증까지 겹쳐 밤마다 수면제를 먹고 잠든다.

○ 자녀와 같은 운명

10일 오전 7시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 엄마 변은정(가명·47) 씨는 선혜(가명·15·발달장애 1급)를 깨워 등교 준비를 돕는다. 가방 챙기는 것부터 교복 입기까지, 변 씨의 손이 거치지 않는 데가 없다.

오전 8시. 선혜를 배웅한 변 씨는 학교 인근 마을공동체 사랑방을 찾는다. 자폐증이 있는 선혜가 수업 중에도 엄마를 찾을 때가 있어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 씨는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마을공동체 일을 돕는다. 주민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 일의 취지다. 변 씨는 혹시 이 일이 잘된다면, 선혜 같은 아이가 이곳에서 길을 잃어도 주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오후 3시 반. 변 씨는 수업을 마친 선혜를 데리고 종로구에 있는 재활치료센터로 갔다. 이날은 한 곳이지만 일주일 동안 변 씨 모녀가 재활치료를 위해 찾는 병의원(복지관 포함)은 총 10여 곳에 달한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다. 그래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경기 고양시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3년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한다.

변 씨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지금이 차라리 행복한 시기라고 한다. 4년 뒤면 선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장애인이라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 보호시설에 보내지 않으면 선혜의 하루는 오롯이 변 씨가 책임져야 한다.

“선혜가 학교에 가면 학교로, 병원에 가면 병원에 갑니다. 훗날 선혜가 집 안에만 있어야 한다면, 저 또한 같은 생활을 해야겠지요.”

○ 덩치가 커진 아들, 작아진 엄마

“아들을 사랑하지만 숨이 막히네요.”

19일 통화한 신정순(가명·72) 씨는 수화기 너머로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신 씨는 온종일 집에서 아들 성태(가명·35·정신지체 1급) 씨를 돌본다. 아들이 라디오를 들으며 얌전할 때도 있지만 한순간 돌변해 온 집 안을 어질러 놓는 경우가 많다. 100kg에 육박하는 아들이 몸으로 밀치면, 칠순이 넘은 신 씨는 맥없이 쓰러질 뿐이다. 변실금이 있는 성태 씨가 집 안에 오줌이나 변을 보면 뒤처리를 하는 것도 신 씨의 몫이다. 일용직 노동을 하다가 고혈압으로 몸져누운 남편은 신 씨를 도울 수 없다. 성태 씨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신 씨는 집에서 이런 생활을 계속해 왔다.

신 씨가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 성태 씨와 주간보호소에 가는 날이다. 성태 씨가 이곳에서 놀이를 하는 시간에 신 씨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다른 어머니와 수다를 떤다. 이마저도 등록 기한이 마감되는 올 12월까지라고 한다.

올해 4월 운 좋게 활동보조 선생님을 구해 한시름 놓는가 했다. 체육학과를 나온 20세 초반의 건장한 남자 선생님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주부이거나 연세가 많은 아저씨라 거구인 성태 씨를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년이면 다른 일을 구한다고 하니, 또 걱정이 밀려온다. 신 씨는 간절히 바란다.

“매일 초주검이 돼 잠자리로 가요. 잠깐이라도 숨 쉴 수 있었으면 해요. 제 아들처럼 졸업을 했더라도 또 장애가 심하더라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저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요.”

▼ “동정심 가득한 눈길 부담돼… 차라리 그냥 지나가 주세요” ▼

장애인 부모 70명 심층 설문


‘초원이 엄마’처럼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일까. 본보 취재팀과 푸르메재단은 이달 1∼13일 장애인 부모 7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부모들이 가장 힘겨워할 때는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소외감을 느낄 때였다. 23명(32.9%)이 이때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지적장애 2급 자녀(9)를 둔 엄마(42)는 “아이가 친구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싶어하는데 정작 그 아이는 모르는 사람 대하듯 외면할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자녀가 장애로 힘들어하거나 나아지지 않는 모습에 절망감을 느낄 때가 가장 힘들다는 응답이 15명(21.4%)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어 장시간 돌봄으로 피로를 느낄 때(11명·15.7%), 장애 자녀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소외감을 느낀 다른 자녀와 빚는 갈등(8명·11.4%) 등이 부모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

부모의 바람은 간단했다. 호기심이나 동정심 가득한 시선으로 아래위를 훑지 말고 그저 지나가 줬으면 했다. 지나친 호기심과 놀림 때문에 마음에 상처 받는다는 부모가 상당수였다. 자녀가 뇌병변장애 1급인 한 엄마(44)는 “아이가 ‘엄마 사람들이 나를 왜 자꾸 쳐다봐’라고 물어 봐서 ‘너무 귀엽고 예뻐서 그런 거지’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매번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정부에 가장 원하는 것은 치료비의 건강보험료 급여항목 확대 등 경제적 지원 확대(16명·22.9%)였다. 활동보조서비스(14명·20.0%)와 평생교육기관(13명·18.6%)의 확대, 재활 및 교육 프로그램의 확대(12명·17.1%)도 그들의 작은 바람으로 꼽혔다.

김재형 monami@donga.com·황성호 기자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장애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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