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전승훈]교황과의 독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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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파리 특파원
전승훈 파리 특파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동행 취재하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마음속에 따스함이 남아 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뒤 거리를 걷다가 성당이 보이면 잠시 들어가 묵상을 하곤 했다.

바티칸 공식수행기자단의 한 명으로 교황 전세기에 동승해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더구나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세 번씩이나 교황을 단독으로 친견하는 행운을 얻었다.

교황은 방한 전세기에 동승한 70명의 기자와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나는 얼떨결에 교황과 악수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내 뒤에 줄을 선 기자들이 셀카도 찍고, 포옹도 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교황은 모두 받아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용기를 내 다시 줄을 섰다. 나는 로사리오 묵주에 축성을 받은 뒤 교황에게 “매일 어떤 기도를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예스”였다.

영어로 묻는 내 질문을 교황이 제대로 이해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행복했다. 내가 물었고 교황이 특별한 답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후 ‘예스’라고 기도하라는 말은 묵상의 화두가 됐다. ‘노’가 아닌 긍정적인 삶을 추구하라는 당부였을까. 아니면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에 성모 마리아가 ‘예스’라고 순종한 것처럼 내게 주어진 소명을 잘 따르라는 말씀일까.

두 번이나 줄 선 나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었던 것처럼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관대함’으로 국민을 감동시켰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에서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고속철도(KTX) 승무원, 꽃을 든 어린 소녀까지 사람들이 내민 손을 한 번도 마다하지 않았다. 교황청 경호원의 가장 큰 임무는 축복 받을 아이를 교황에게 ‘배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교황의 악수는 표를 얻기 위한 것도, 팬 서비스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자비와 측은지심에서 나온 몸짓이었다.

교황이 사람을 만나는 원칙은 늘 ‘독대(獨對)’였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교황을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단 둘이 있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몸을 낮춰 단 한 사람의 눈빛에 집중하는 교황의 시선 때문이었다. 교황이 차에서 내려 군중 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짜릿한 감동은 잊혀지지 않는다.

외신기자들은 내게 교황의 방한이 대통령에게 유리한가, 야권에 도움이 될 것 같은가라고 묻곤 했다. 국내에서도 정치적 계산이 분주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녹인 교황의 메시지는 정치나 종교의 테두리로 가둬 놓기엔 너무나 컸다.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기자회견 후 교황을 뒤따라갔다.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교황은 내게 “한국인에게 찬사를 보낸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는 친필 메시지를 써주었다.

교황은 가톨릭계에선 오랫동안 ‘무오류’의 존재로 알려졌는데 “기도해 주겠다”가 아니라 “기도해 달라”니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러나 교황은 기자회견에서 “매일 죄도 짓고 실수를 반성한다”며 자신이 평범한 인간임을 밝혔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 신경증을 앓고 있으며 앞으로 2∼3년 뒤엔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외신들은 교황이 처음으로 죽음을 암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살벌한 저주가 판치는 세상에서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기도를 하라는 당부가 아니었을까.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본다. 주님,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곁에 좀더 오래 머물며 사랑의 길을 보여주게 해주소서.

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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