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다양한 사람의 글을 보고 싶다[2030 세상/정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어떻게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 무겁다. 대부분 지인 추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공개 채용하는 제도가 아닌 추천받아 ‘스카우트’하는 제도는 좋을까? 나쁠까? 일단 추천받아 뽑힌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답답할 것이다. ‘혹시 주변에 2030 이슈를 다룰 만한 젊은 필진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의 단톡방에 공지가 뜨면 그때부터 필진 찾기가 시작된다. 나도 아는 기자의 제안으로 기회를 얻었다.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린 글이 한몫했다. 한번 잡은 기회는 더 많은 기회로 이어졌다. ‘취준생(취업준비생)’ 신분으로, 공적(公的)인 발언을 할 지면을 얻었고 4주마다 돌아오는 마감으로 글쓰기 능력도 길렀다. 출판사에서 연락도 오고 책도 계약했다.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으로 글쓰기 수업도 열었다. ‘조금의 운이 작용했지만, 내가 글을 잘 써서 얻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다 사라졌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심지어 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긴 글을 쓰지도 않았다. 음식, 고양이, 꽃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판만 깔아주면 자기 삶의 비밀을 토해냈다. 만약 그들에게 4주마다 강제 마감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적인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은 글을 써 낼까? 문득 내가 얻은 기회가 얼마나 특권이었는지 돌아봤다.

이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필요한 곳에 가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먼저 고정 필진 외에도 다양한 필진에게 기회를 주는 지면들이 생겨야 한다. 어떤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할까. 젊은 엘리트의 목소리만이 신문에 실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린 이제 안다.

성별, 학력, 지역, 성적(性的) 지향, 나이, 직업, 경제력, 장애, 질병 등 다양한 범주에 속한 시민들의 기고문을 주류 언론이 보여줘야 한다. 가장 쉬운 접근으론 연령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에 못 가는 초등생의 일기장도 궁금하고, 수능을 앞둔 고교생의 논설문도 궁금하다. 누군가에겐 갑자기 닥친 재난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재난이 일상이었던 아픈 사람들의 병상일지도 더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인터뷰 당하는 것과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니까.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 말하는 ‘n번방 사태’에 대한 기고문이, 아무 말이나 하는 국회의원의 뉴스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에 무감각한 문화에서 침묵하던 남성의 참회록도 ‘페북’ 아닌 주류 언론에서 보고 싶다. ‘국가의 책임’이나 ‘정책적 변화’만을 논하는 글 말고,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글은 또 다른 힘을 가진다.

3년 전 처음 청탁받아 칼럼을 쓸 땐 무엇이든 거침없이 쓸 수 있었다.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 못 하는 청년이라 힘들고 ‘미투’ 시대의 여성이라 분노한다고 쓰면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다. 비주류라 생각했던 페미니즘은 시대정신이 됐고 나는 전보다 돈도 많이 번다. 우리가 선 자리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삶과 글에 반영할 수 있기를. 더 나은 논쟁을 위해, 언론사는 새로운 필진 발굴에 박차를 가해 주길 바란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칼럼#언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