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사태가 던진 질문, 국립예술단은 왜 존재하는가[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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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이럴 줄은 몰랐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탄식이다. 단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대구에서 공연한 후 자가 격리 기간에 일본 여행을 하고 외부 강의를 했다는 사실에 강 단장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단원과 직원들도 “문화 기사가 아닌 사회 기사로 국민적 주목을 받게 돼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일본 여행을 가 국립발레단 창단 후 처음으로 해고 처분을 받은 나대한은 3월 27일 재심을 청구했다. 4월 10일 이내에 재심이 열릴 예정이지만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낮아 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대한은 군무를 추는 ‘코르 드 발레’다. 특강을 해 각각 정직 3개월, 1개월 징계를 받은 김희현 솔리스트와 이재우 수석무용수는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강 단장은 “군무 없이 주연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단합을 중시하기로 유명하다. 그 자신이 작은 일이라도 정해진 규칙은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어서 단원들도 ‘당연히’ 그럴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국립예술단원의 외부 활동도 도마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 산하 17개 기관 및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2018, 2019년 외부 활동 파악에 나섰다. 현재 자료를 받고 있고 문제가 심각할 경우 현장 조사를 할 예정이다.

외부 활동 규정은 예술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단장 및 기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부가 수입을 올리고 퇴직 후를 대비해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다. 소속 단체를 알리고 예술 역량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도 있어 적정 수준의 외부 활동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창작 활동은 장려하되 영리 목적의 활동은 횟수를 제한하는 식으로 규정을 보다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발레단 사태는 국립예술단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매년 단원을 뽑는 곳도 있지만 몇 년에 한 번 소수를 뽑는 곳도 많아 국립예술단원이 되려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입단은 최고 기량을 갖췄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월급을 받으며 예술에 전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급여는 단체마다 다르지만 대기업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국립발레단원은 40세 전후에 은퇴하고 연금이 없지만 장르에 따라 정년을 채우고 공무원 연금을 받는 곳도 있다. 한 국립예술단 합격자는 “꿈의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며 벅찬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받는 국립예술단은 수준 높은 작품을 무대에 많이 올려 존재의 필요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관객층이 얕아 공연을 자주 할 수 없다”는 말 대신 참신한 시도를 통해 관객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 에이스들이 모인 단체들 아닌가.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지면 단원들은 자연스레 외부보다 예술단에 집중하게 된다.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게를 지닌 무대를 지금보다 더 자주 보고 싶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코로나19#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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