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혼밥, 앞접시… 코로나19로 바뀌는 食문화[광화문에서/신수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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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두 달 넘게 장기화되면서 우리 생활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식문화도 변하고 있다.

학교 개학이 연기되고,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이들이 늘면서 외식 대신 집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족끼리 집밥을 먹는 횟수가 늘면서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리고)’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밥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줄 가정간편식(HMR) 시장과 각종 반찬 및 식자재를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새벽배송 시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CJ제일제당이 최근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식소비 변화 트렌드를 조사한 결과, 집밥을 먹는 비중이 83%로 작년보다 23.5%포인트나 늘었다. 배달 음식은 9%, 테이크아웃 4.6%, 외식 비중은 3.4%에 그쳤다.

집밥 문화만 바뀌는 게 아니다. 방역을 위해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줄었고, 외식 메뉴와 먹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도시락을 집에서 싸오거나 편의점 등에서 간편식을 사서 혼자 먹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외식을 하더라도 하나의 음식을 여러 명이 나눠 먹어야 하는 메뉴는 피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메인 메뉴는 물론이고 반찬도 다른 사람의 젓가락이 닿지 않도록 따로 담아 먹을 수 있게 앞접시를 요구하거나, 반찬을 한 사람씩 따로 주는 식당을 골라서 가기도 한다. 가족 간에도 찌개와 반찬 등을 덜어서 먹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러 명이 한 찌개 냄비에 숟가락을 넣어 떠먹는 식사는 요즘 분위기로는 상상조차 힘들다.

식사할 때 위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음식평론가인 비 윌슨은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전망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특집 기사에서 “3월 초만 해도 친구들 여러 명과 다양한 메뉴를 시켜서 나눠 먹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음식을 나눠 먹는 식사 방식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감염 불안, 외부 단절, 경제 위기 등으로 어느 해보다 힘든 봄이다.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이 안에서 소소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진다.

가족을 위해 ‘돌밥’ 한다는 한 주부는 “음식 준비가 쉽지는 않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온 가족이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밥을 먹겠냐”며 “힘든 시기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워킹맘은 “하루 전날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있어서 덜 힘들다”며 “집밥의 수고를 덜어주는 배송 기사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다 위생적인 식문화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한식 특성상 반찬이나 찌개 등을 여러 명이 공유하면서 각종 전염병을 서로 옮긴 적이 많았는데 각자 그릇에 떠서 음식을 먹으면 이러한 전염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위생의 시대’로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마스크를 벗고 좋아하는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빨리 되찾고 싶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식문화#코로나19#집밥#혼밥#앞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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