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한자리서 묵묵히 밝힌, 100년의 불빛을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일 0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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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송신년호는 매년 사진기자의 고민거리입니다. 한 해를 대표하는 사진을 ‘창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100주년을 앞둔 동아일보의 1면은 더욱 특별했습니다. 다양한 기획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100년 동안 동아일보와 같은 역사를 갖고 있는 1920년에 만들어진 건축물을 찾아봤습니다.

기차역, 예배당 음 아니야 등대… 등대?

그래! 등대다! 검색해보니 간절곶 등대가 1920년 3월 26일 첫 불을 밝힌 걸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의 모습.

등대가 생각했던 느낌과 달라서 난감했다.
등대가 생각했던 느낌과 달라서 난감했다.


동아일보 100주년에 맞는 이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든든한 맞선배와 함께 400km를 달려 도착한 간절곶 등대의 모습이 생각보다 뚱뚱(?)하고 주변에 언덕이 없어 촬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던 통신탑이 유일하게 높은 곳이라 저는 거기로 올라가기로 하고 맞선배는 그나마 언덕인 뒤쪽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고소공포증을 느껴봤다.
처음으로 고소공포증을 느껴봤다.

막상 밑에서 볼 땐 낮아 보였던 통신탑은 그날 풍속 10m/s가 넘는 강풍에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4~5층 높이에 오르니 안전 장비를 착용했어도 다리가 덜덜 떨리더군요.

아래가 뚫려 있는 구조라 삼각대도 고정이 쉽지 않아 청테이프로 고정시켜야 했습니다.

기둥에 걸려 있는 저 끈 하나가 큰 위안이 됐다.
기둥에 걸려 있는 저 끈 하나가 큰 위안이 됐다.


일출과 일몰 두 번 통신탑을 올라갔는데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감사합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무섭더군요. 왜 영화에서 “아래를 보지마!” 라는 대사를 하는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꼭 밑을 보죠) 요즘엔 비디오게임에서도 캐릭터들을 언덕이나 건물을 오르게 할 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가까이서 촬영했더니 등대 불빛이 넓게 퍼져나갔다.
가까이서 촬영했더니 등대 불빛이 넓게 퍼져나갔다.

다만 광각으로 촬영을 해야 하는 구조라 등대 불빛이 일직선으로 퍼져나가지 못해 생각보다 사진이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뒤에서 선배가 망원 렌즈로 촬영한 덕분에 무사히 31일자에 창간 1면 사진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맞선배 덕분에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맞선배 덕분에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등대 출입이 금지된 상황에서 촬영에 협조해주신 울산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와 간절곶 등대 관리 직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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