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3개월 무제한 돈 푼다”는 한은, 더 빠르고 과감해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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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다음 달부터 석 달간 금융회사들에 필요한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금경색 해소를 위해 금융회사로부터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초유의 조치로, 기업들이 단기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아직도 한은이 소극적이고 굼뜨게 움직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유럽 일본의 중앙은행들은 회사채까지 직접 사들이는 데 반해 한은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특수목적회사까지 설립해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사들일 만큼 새로운 조치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과 영국은행, 일본은행도 회사채를 직접 매입한다. 한은처럼 금융회사를 통한 간접지원보다 기업들의 도산을 막는 데 더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국공채가 아닌 일반 회사채를 사들이는 것은 한은법에 저촉되고, 만약 손실이 날 경우 국민 손실로 돌아온다고 난색을 표한다. 달러 같은 기축통화와 달리 원화를 대량 찍어내면 환율 상승 등의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한은법은 2011년 개정돼 법이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회사채 매입 여부는 더 심층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다른 중앙은행들은 직접 책임지고 금융시장 불안을 수습하는데 한은은 보신주의에 빠져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한은의 조치들은 항상 한발씩 늦었다. 미 연준은 지난달 말 미국에서 처음 코로나19 대유행 우려가 나오자 1주일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고 다시 10여 일 만에 1%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잇달아 실시했다.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는 국채 등을 사들이는 양적 완화도 4조 달러로 발표했다가 시장불안이 계속되자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등 정부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그러나 한은은 한국에서 경기급락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금리를 인하했고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그제야 제한적인 ‘한국판 양적 완화’를 내놨다.

한은은 “정부가 보증하면 회사채도 매입할 수 있다”고 정부에 공을 넘겼지만 그러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회사채 외에 장기 국공채를 사들이는 등 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독립된 권한과 능력을 가진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제 지원에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행#자금경색 해소#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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