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은 빙산의 일각이다[현장에서/곽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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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층으로 구분되는 인터넷 세계.
3개 층으로 구분되는 인터넷 세계.
곽도영 산업1부 기자
곽도영 산업1부 기자
“총선맞이 언론플레이 한다고 n번방 수사 집중시키는 모양인데, 그동안은 ○○사이트 많이 이용하십시오.”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주모자인 조주빈(25)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전국에 얼굴을 드러낸 25일 한국어 다크웹(dark web) 사이트 한 곳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한 불법 음란물 유통이 어렵게 됐으니 자신들의 사이트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n번방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인터넷의 심연, 다크웹의 세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다크웹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월드와이드웹(WWW)과 달리 특정 브라우저 등 익명화 장치를 거쳐 접속하는 어둠의 인터넷이다.

국내 보안업계는 n번방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본다. KAIST 네트워크 보안 연구실 자료에 따르면 앞서 다크웹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마약 커뮤니티 ‘하이코리아’가 적발돼 폐쇄됐다. 또 다른 다크웹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에서는 아예 한국인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성폭력 영상을 유통시키기도 했다. 이미 n번방은 수사의 풍선효과로 여기저기 제2, 제3의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낳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크웹이 단순히 마약이나 성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사안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다크웹 전문 보안기업 S2W랩이 다크웹에서 찾아낸 불법 사이트 중에는 여행사나 항공사를 해킹해 한국인 여권 정보를 판매하거나 국내 관공서나 교육·문화 사이트에서 빼낸 개인 인터넷 정보를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리벤지 포르노(보복성으로 공개한 성관계 동영상)나 지인의 개인 정보를 훔쳐 판매하는 사이트도 있어 다크웹의 범위는 이미 우리 손끝에 닿을 정도로 가깝다.

사실 초기 다크웹은 개인에 대한 부당한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 중립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정치 망명자와 소수 성향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찾기 위해 숨어든 최후의 보루였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행적을 추적당하고 싶지 않은 이용자들을 위해 다크웹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크웹 범죄는 익명성이라는 인터넷 시대의 축복을 악랄하게 활용한 결과물인 셈이다.

인터넷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정보기술(IT) 선진국 한국이 다크웹 범죄에서 열외가 되긴 어렵다. 하지만 한국은 기업들의 기술 역량이나 정부의 혁신 의지도 높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국내 다크웹 대응 기술 연구가 활발해지고 정부에서도 국제 공조 수사에 적극 나선다면 이 분야에서 IT 선진국들을 리드하는 위치에 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n번방이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국내 보안업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
#n번방#다크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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