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통닭이 먼저냐 닭똥집이 먼저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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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통닭’의 가마솥 생생 통닭. 석창인 씨 제공
‘이수통닭’의 가마솥 생생 통닭.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기름이 배어 터지기 일보 직전의 누런 봉투가 귀갓길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날, 자는 척하던 어린 형제는 벌떡 일어나 때아닌 통닭을 포식하곤 했습니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보슬보슬한 맛이었는데 형과 나는 다리 하나씩을 맡고 어머니는 살이 별로 없는 날개 쪽을 드셨지요. 요즘은 닭다리보다 날개가 더 인기라지만 당시엔 삼계탕이나 통닭이나 오동통한 다리가 핵심이었습니다.

그 봉투엔 통닭 그림과 함께 ‘수원 태백통닭’이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어서 중학생이 된 뒤 호기심에 그 집을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입구 옆 전자레인지 비슷한 큰 구조물 속에서 벌거벗은 닭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그런 방식이 전기구이였음은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이런 형태의 통닭집은 주로 ‘영양센터’라는 간판을 달고 성업했지만 그것도 잠시의 유행이었습니다. 이후 상호에 ‘통닭’이라는 말 대신 ‘치킨’이란 외래어가 들어서면서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가 군웅할거하는 모양새가 됐지요.

그런 까닭에 닭 튀긴 것을 통닭이라 말하는 사람은 구세대고 치킨이라 부르면 신세대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닭요리의 대중적 첫 시도가 통닭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게다가 통닭구이의 출발이 1960년대 초반이니까 저희 같은 베이비붐 세대와는 태생적으로 운명공동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난 수십 년간 통닭 조리법은 매우 다양한 변주를 거쳤지만 가마솥에서 기름에 통째로 튀긴 옛날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닭의 특정 부위만을 따로 떼어내 요리하는 식당도 많은데 춘천의 명물 닭갈비가 그렇고, 남도지방의 닭 가슴살 육회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라는 닭발도 매운 정도에 따라 메뉴가 나뉘고 뼈를 아예 발라서 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옛날 방식의 통닭집에서 내는 닭똥집을 따라올 부속 안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통닭도 통닭이지만 튀김옷을 살짝 입혀 튀겨낸 닭똥집에 먼저 손이 가는 이유는 근육 덩어리인 똥집 특유의 쫄깃함과 고소함 때문입니다. 닭똥집이란 닭의 모래주머니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지만 모래주머니라고 하면 외려 모래를 씹는 느낌이 떠올라 영 맛이 나질 않습니다.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인근 ‘이수통닭’은 강남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찾는 2차 필수 코스입니다. 통닭 한 마리는 기본으로 주문하고 별도로 닭똥집 한 접시를 추가하는데 동반자들은 다들 어리둥절해합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먹느냐’던 친구들이 닭똥집과 통닭을 ‘순삭’하고 말지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닌, ‘통닭을 먼저 해치우느냐, 닭똥집을 먼저 해치우느냐’ 같은 신종 치킨게임을 한바탕 벌이게 됩니다.

○ 이수통닭 서울 서초구 방배천로 92, 가마솥 생생 통닭 1만7000원, 모래집(닭똥집)튀김 1만3000원.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이수통닭#통닭#닭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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