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먼저 쓰러지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광화문에서/유재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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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차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인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A 씨는 “코로나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게 생겼다”는 게 무슨 말인지를 최근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매출이 거의 바닥나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버티던 그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전화 연결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찾아가도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 보름 넘게 상담조차 받을 수 없었다. 은행에서 소상공인 지원을 한다는 뉴스를 보고 찾아가면 “아직 본점에서 받은 지침이 없다”는 말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초조함은 커져만 갔다. 당장 카드대금 납부일과 각종 결제일이 다가오며 숨통을 죄어 오는데, 기약 없이 전화통만 붙들고 있는 자기 모습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나라에선 항상 즉시 돕겠다 하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끼리는 ‘목숨 끊어지고 돈 나오면 뭐하느냐’는 얘기를 한다”며 “이달은 겨우 고비를 넘겼지만 다음 달엔 또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통상 위기가 오면 약자들은 가장 먼저 쓰러지고, 회복은 제일 늦게 한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도 그렇다. 이렇다 할 여유자금 없이 수입이 갑자기 끊긴 자영업자들은 이런 상태가 한두 달만 지속돼도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 하지만 지원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가 아무리 수십조 원을 투입하는 통 큰 대책을 발표해도 이들에겐 체감이 되지 않는 숫자일 뿐이다. 일단은 하루하루 버티는 게 우선이기에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몇 푼이 더 아쉽다.

그보다 더한 타격을 입는 것은 미용사나 가사도우미, 헬스트레이너, 대리운전사 같은 ‘밀접 접촉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한 달 동안 평소 수입의 절반 이상을 날렸지만 피해를 호소하거나 보상을 청구할 곳도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 움직임은 생계가 곤란한 노인들의 재정 일자리마저 빼앗아 버렸다. 경제 피라미드의 하층을 구성하는 이들에게는 울타리가 되어주는 회사도, 이익을 대변해주는 노조도, 나서서 힘을 실어주는 정치인도 없다. 각자가 쓸쓸하게 위기에 맞서며 버거운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고정 수입을 누리는 정규직들 사이에서도 코로나 차별은 두드러진다. 재택근무나 돌봄휴직을 허락하는 회사와 아닌 회사가 있고, 직원 복지로 마스크를 주는 회사와 안 주는 회사가 있다. 요즘 학부모들은 “이래서 자식을 대기업에 보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개학이 계속 연기되면서 교육 불평등의 민낯도 드러나고 있다. 맞벌이 서민 가정은 아이 맡길 곳도 구하지 못해 매일같이 전쟁을 벌이는데 부잣집은 온라인 학원 교습과 화상 과외로 촘촘한 홈스쿨링 시간표를 짜고 있다.

경제위기는 약자들만 골라 때리는 반면 현금을 쥐고 있는 자들에겐 오히려 기회를 준다. 1997년과 2008년에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하층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쏟아지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선 ‘삼성전자 주식을 얼마에 사야 하는지’ ‘집값이 언제 바닥을 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정부와 공동체가 제때 손을 써서 이 사회의 약자들이 무너지고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번 위기는 밑바닥에서 시작된 위기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소상공인 지원#밀접 접촉 서비스업#코로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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