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뜻을 좋은 결과로 만드는 리더[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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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도 국가도 문제 해결의 연속
선한 의도만으론 풀기 쉽지 않아
프로는 ‘좋은 결과’까지 만들어내
투표장서 그런 후보에 표 던져야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요즘 남자 아이들은 성적이 나쁘다고 야단맞으면 이런단다. “나는 남자잖아요”라고. 남자라서 여학생보다 뒤처지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리 진급이 남자는 4년, 여자는 7년이라고 회사 사규에 당당하게 나와 있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선 남자와 여자가 같다고 가르쳤는데 학교 밖으로 나오니 그건 당위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순응하거나, 뛰쳐나가거나.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선 저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자! 지금은 ‘미스 최’라며 이름 석 자 중에 성만 부르며 얕잡아 보지만 일을 잘해서 나를 찾지 않을 수 없게 하자고. 미스 최 대신 최 대리님, 최 차장님이라 부르게 하자고.

내겐 그것이 프로가 되는 거였다. 젊었든 늙었든, 백인이든 유색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그 일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 바로 프로페셔널이었다. 그런 사람은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때 나는 언어의 힘을 믿었던가 보다. 그저 일을 잘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프로라는 개념에 주목했고 그에 의지해 반생 넘게 살았다. 이런 심정을 광고 카피로도 썼는데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여성복 카피는 그야말로 대박이 나 그 브랜드의 매출을 올린 것은 물론이고 전 국민에게 프로라는 개념을 회자시켰다. 1991년의 일이다.

그 후 프로페셔널에 또 다른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책방을 열고 나서다. 가만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책 읽을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부족해 보였다. 우리 책방을 책만 사는 곳이 아니라 책 읽기에도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등 높은 의자에 허리를 깊숙이 묻고 세상 편안한 자세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오랜 시간 읽는 책이라면 으레 구입해서 읽는 것이지 사지 않은 책을 긴 시간 읽는다는 건 예상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계산도 하지 않은 책을 한참씩 읽다 가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렇게 읽은 책은 표가 나고 팔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손 타지 않은 새 책을 찾으니까. 뭐라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전전긍긍했다.

그때 또 한 번 배웠다. 프로페셔널이란 좋은 뜻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구나,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을 좋은 결과로 만드는 것까지 해야 프로구나! 처음부터 나쁜 뜻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사기꾼이거나 지능적인 범죄자다. 대부분은 잘해 보려 했는데 안 되는 거다. 우리가 일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이런 일이야말로 절대적으로 프로페셔널이 필요하다. 전략이든 정책이든 실제로 작동하는 해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그래서 생각해 본다. 기업이든 사회든 국가든 리더야말로 프로페셔널이라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는 누군가의 커리어를 볼 때 어떤 곳에서 어떤 경력을 쌓았고 어떤 타이틀로 근무했는지를 주로 따진다. 이력서나 조직의 인사카드에도 그런 정보들이 주로 나와 있다. 졸업한 학교와 근무한 회사, 타이틀…. 그런데 사회생활을 삼십 몇 년 하고 보니 그것들이 말해주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큰 조직일수록 ‘숨어 있기 좋은 곳’인 경우가 많아서 인간성이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일을 잘하거나 뚜렷한 솔루션을 내지 않고도 ‘슬기로운 조직 생활’을 할 수 있다. 회사 생활 잘하기, 조직 생활 잘하기가 목표인 경우가 제법 많은 것이다. 큰 조직을 이끄는 유명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이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논어등반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우리 책방에서 논어를 강의하는 이한우 선생의 책 중에 ‘군자론,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책이 있다. 내 생각이 꼭 그렇다.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고 해결하는 사람이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리더야말로 프로페셔널이라야 한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을 반드시 좋은 결과로 만들어 내는 사람.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선거가 코앞이다. 많은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리더가 되겠다고 출사표를 냈다. 그들은 과연 프로일까? 우리의 문제를 성심껏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묻자. 지금까지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앞으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번지르르한 경력이나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속했던 곳의 문제를 해결했고 해결하는 데 관심과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를.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어느 것 하나 녹록하지 않으니까.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4·15총선#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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