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 다른 길로 가는 한국의 항공 지원 정책 [떴다떴다 변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9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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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외 항공업계가 여행객 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이 한산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외 항공업계가 여행객 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이 한산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항공사들에 대한 정부 지원 대책이 해외 주요국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는 항공사 유동성 위기 극복에 집중하는 지원책이 있어야 항공생태계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1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항공업계는 공동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에 약 70조 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기와 중장기로 나누어 유동성을 지원해주고 각종 세금도 면제해주거나 유예해달라는 입장이다. 코로나19가 특정 항공사 잘못으로 인한 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항공사들에게 적절한 유동성 혜택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항공업계는 단기적으로는 보조금 형식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여객 운송사에 250억 달러를, 항공화물업계에 40억 달러를 각각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약 300억 달러 규모의 각종 대출 지원을 해달라고 하고 있다. 또 필요한 경우 무담보 대출 및 무이자 대출 등의 특단의 대책까지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국 항공사들은 항공사에 대한 연방 소비세는 물론 항공권과 화물, 연료 등에 붙는 각종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일시적으로 없애달라고 하고 있다.

미국 항공업계는 “(금융 지원의) 과정이 간단하고 즉각적이어야 하며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며 “항공사들이 신용 상태나 담보 여부 등으로 차별받지 않고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최대한 빨리 지원받아야 항공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다음날 “항공업계 요청을 대부분 수용하고 전폭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미국 주요 항공사 주식도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에 장중 4~9% 치솟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관계 부처와 협력해 항공사들의 공동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미국뿐 아니라 주요국 항공사들은 항공업계 전반이 어려워지면서 자체 신용만으로 채권 발행 및 대출 등을 통한 경영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정부와 국책은행이 유동성 지원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동성 극복에 방점을 둔 지원 대책을 논의 중이다. 독일은 루프트한자 등 자국 항공사에 대한 무한대(Unlimited) 금융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도 에어프랑스 항공사에 11억 유로 규모의 지원을 할 예정이다. 영국도 버진애틀랜틱에 10조 원 이상의 금융 지원을 할 계획이며, 대만도 항공사들에 1조1000억 원을 금융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항공산업 지원 대책은 유동성 지원에 방점을 찍고 있는 글로벌 추세와는 다르게 나가고 있다. 정부가 18일 내놓은 항공업계 지원책은 항공사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항공기 착륙료를 10~20% 감면해주기로 한 건, 감면 기간이 몇 달에 불과할 뿐 아니라 현재 항공기 10대 중 8대가 쉬고 있는 상황에서 착륙료 감면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화물 및 여객, 항공기 유도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항공 조업사들은 한 달에 150억 원 이상 씩 피해가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사용료 감면 등 정부 지원을 다 합쳐봐야 한 회사당 1억 원 정도를 지원받는 꼴이다. 당장 인건비와 항공기 임차료, 유류비, 각종 부품비 및 시설 이용료 등에 쓸 돈이 없는 상황에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 정부의 유동성 지원은 깜깜 무소식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7일 1차로 항공사 지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저비용항공사(LCC)들에 3000억 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책 발표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긴급 자금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더군다나 3000억 원은 정부가 새롭게 조성한 돈이 아니다. 기존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 대상에 항공사만 끼워 넣은 것이다. 일부 항공사들은 지원 규정 미달 및 재정 상태 악화 등을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분위기다. 제주항공에 매각된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을 통한 지원 방침을 정했지만, 제주항공이 최종 인수되기 전까지는 이스타항공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상황이 꼬이고 있다.

항공사들의 유동성 위기는 공항 조업사들과 기내청소, 카운터 수속 업무 등을 하는 협력사들에도 영향이 간다. 항공사들이 돈이 없다보니 협력사와 조업사들에 대금을 제때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업사들은 항공기가 한대가 뜨고 내릴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인데, 노선의 80% 이상이 취소되면서 매출이 60% 이상 줄어 매달 1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다.

한 항공사 임원은 “정작 필요한 항공사에는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진통제 한 대 놓아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조업사 관계자는 “우리가 요구한 1%도 지원을 해주지 않고 있다. 권고사직은 물론 계약직의 정규직 미전환 등의 인력 조정이 불가피 하다”고 말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최근 전 세계 항공사 대부분이 약 두 달 정도만 버틸 수 있는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대로 가다간 여름부터는 항공사들의 파산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 항공사 임원은 “지금 유동성 확보가 절실하다. 항공사들은 항공기도 대부분 리스여서 담보도 없다”며 “국내 항공사들이 쓰러지면 항공업계 혼란은 물론 코로나19 이후 항공 수요가 다시 늘었을 때 풍부한 자금으로 버티고 있었던 외항사들의 잔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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