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멈춘 ‘불확실성의 세상’에서[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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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캔슬 에브리싱(Cancel Everything).” 16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잡지 ‘애틀랜틱’은 10일자 기사 제목에서 모든 것을 취소하라고 적었다. 이미 직장인들은 많은 회의와 행사, 약속과 회식을 취소하며 지내고 있다. 전문가들이 위기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그것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novel) 것인가 아닌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홍수나 가뭄, 북한 위협 등의 영향은 우리가 경험해 본 것이지만,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일상의 영향은 다르다. 용어도 생소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는 새로운 일상이 됐다.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의 중심에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 자리한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익숙했던 삶의 규칙이나 ‘지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재작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위치한 미래연구소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 들었던 말이 최근 다시 떠올랐다.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살아갈 때에는 새로운 규칙을 스스로 만들거나 새로운 지도를 스스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는 직장인들에게 무슨 뜻을 가질까.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다. A는 거의 한 달째, B는 격주로 재택근무 중이다. 처음에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황이 장기화되자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e메일이나 전화 등을 통해 회의를 하기도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면 기본적으로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는데 혼자 어떻게 일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분들도 생겨났다.

C는 재택근무 상황에서 팀원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잘 모른다. 팀원들을 그냥 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일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온라인 교육도 받게 했지만,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우리 일상이 복구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부와 사회에서 진행하는 복구대책에 적극 협조하면서 개인 차원에서도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직장인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돌봐야 할까. 새로운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언제 이 상황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가 될까” “우리 회사의 올해 실적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를 수동적 위치에 놓게 된다. 이런 반응은 처음에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금방 복귀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무기력하게 있기보다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스리니바산 필레이는 우리 뇌의 주의 시스템은 ‘망원경’이 아닌 ‘레이더’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즉, 주의를 한곳에 모아주지 않으면 마치 레이더에 간섭이 많아지는 것처럼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지고, 우리 뇌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명상 등을 통해 주의를 한곳에 모아야 간섭이 적어지게 되고, 기분이 나아진다.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상황에 대해 재해석을 해보는 것이다. 이번 상황으로 의료진과 공무원, 환자나 가족들은 많은 고생을 하고 있지만, 반면 모든 일정이 중단된 상황에서 많은 직장인은 뜻하지 않은 ‘빈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이럴 때 막연하게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이번 상황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재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혼자서 혹은 가족들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찾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어떤 직장인은 그동안 많은 일정과 긴 출퇴근 시간으로 저녁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면 이번에 읽고 싶어도 못 읽었던 책을 차분하게 읽어보는 시간을 갖거나 보드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어떤 직장인은 오랜만에 일기를 써 보거나 그동안 글로 정리해 보고 싶었던 자기의 생각을 차분하게 써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어떤 직장인은 이 상황을 전화와 화상 통화를 이용해 직원들과 좀 더 깊은 일대일 면담을 갖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지도가 없는 상황이 되면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코로나19#불확실성#빈 시간#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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