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통계와 사회적 신기루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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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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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북침 해프닝’이 있었다. 한 언론의 조사결과 고등학생 응답자의 69%가 6·25전쟁이 대한민국의 ‘북침’으로 일어났다고 응답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북한의 6·25 남침은 현대사 연구를 통해 기정사실로 정리된 지 오래였는데 말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역사는 민족의 혼”이라며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박 대통령은 “역사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심층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였다. 10대와 20대 청소년 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거의 전원이 ‘6·25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시작된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같은 것을 물었음에도 결과가 정반대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북침’이라는 낱말이 주는 혼동 때문인 듯하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북풍’과 헷갈렸을 것이다. ‘북풍’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이듯이, ‘북침’ 역시 ‘북쪽에서 침략했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했을 공산이 크다. 북침 해프닝은 설문조사 문항이 바람직하게 구성되지 못해서 초래된 오류였던 셈이다. 우려됐던 ‘민족의 혼 붕괴’와 ‘역사 교육 실패’는 잘못된 통계가 만들어낸 사회적 신기루였다. 이를 근거로 학생들에게 전쟁의 발발과정을 알려주는 교육이 이뤄졌다면 효과 없이 비용만 낭비하는 정책이 되었을 것이다.

통계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도 심각하다. 경제통계 가운데 최근에도 오해되고 있는 주제가 바로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를 기준으로 한 국민소득 계산이다. 지난 주 언론들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2017년 기준)에서 한국이 4만1001달러를 기록해 4만827달러에 그친 일본을 추월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 국민들보다 개인적으로 더 부유하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PPP 개념의 한계를 소개한 언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PPP는 전세계 물가와 환율이 같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국가 간 화폐의 구매력을 동일하게 해주어, 각 나라에서 국민들의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실제의 소비량이 어떠한지를 나타내 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PPP기준 GDP는 국가의 실제 경제력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떤 나라의 경제력이 저조해도 물가수준 역시 낮다면, PPP기준 GDP는 상대적으로 고평가된다.

대만의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은 한국과 일본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다. 그러나 OECD 통계국에 따르면, 같은 시기 대만의 PPP기준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보다 높다. 대만의 물가가 한국과 일본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PPP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지만 절대적인 지표가 절대 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PPP기준 1인당 GDP의 의미를 해석할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한국의 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이 높게 계측된 이유 역시, 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물가수준 때문이다. PPP를 고려하지 않은 1인당 국내총생산을 생각한다면 상황은 반대가 된다. 일본이 4만847달러로, 3만1431달러인 우리나라를 크게 앞선다(IMF, 2019년 명목기준). 한국과 일본 국민이 각각 자국의 1인당 GDP만큼의 현금을 들고 미국을 여행한다고 하자. 일본의 1인당 GDP가 1.3배 더 많기 때문에,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그만큼 더 풍요롭게 여행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일본이 한국보다 여전히 더 부유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언론보도가 이러한 설명 없이 이루어져, 우리 국민들이 일본을 추월했다고 오인할 경우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잘못된 통계로 생겨난 허구적 자신감으로 인해, 일본과의 경제 갈등이 적절한 대비책 없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예측되지 못한 큰 피해로 돌아올 것이다.

사진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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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통계가 만든 신기루는 사회에 해가 된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더 똑똑해져야 한다.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잘못된 통계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전 국민이 회귀분석이나 확률론과 같은 어려운 통계학적 개념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대신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 조사방법부터 해석까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여론조사의 경우 어떤 질문으로 조사했는지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조사대상자들이 잘못 이해해서 본의와 다르게 응답했을 수 있다.

어떤 선택지가 다른 선택지들보다 매력적으로 구성됐다면, 이 통계는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할지, ‘단계적’으로 시행할지 조사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크게 바뀌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반응이 있기 때문에, ‘단계적’ 시행에 본능적으로 더 많이 투표하는 편향(bias)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여론조사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는 신뢰하기 어렵다. 각종 매체에서 숫자가 제시될 때마다, ‘의심부터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통계를 소개하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반 국민들은 모든 분야에 걸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 어렵다. 특히 거시경제 분야에서는 국민소득 등을 계측(measure)하는 절대적인 방법이 없고, 필요에 따라 특정 측면에서의 기준을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기사를 쓸 때, 어떤 개념의 한계점을 철저히 조사해 함께 제시해야 한다. ‘받아쓰는’ 기사 대신 ‘공부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언론이 ‘사용설명서’ 없이 보도할 경우, 우리 사회는 마치 브레이크 없이 과속페달을 밟는 것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언론은 국민들이 세상을 보는 창(窓)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지금보다 진화한 보도활동이 필수적이다.

자료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위력을 가진다. 남북한의 경제성과에 대한 오래된 통계에서, 남한은 북한에 오랫동안 뒤쳐져 있다고 나타난다. 이 자료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남한 경제가 북한 경제를 앞선 것은 빨라도 1970년대 후반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이 통계를 과장해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이근 교수와 통일연구원 김석진 박사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남한 경제는 1968년부터 이미 북한 경제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에 비해 한발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 정부나 국민들이 알고 있었다면 더 빨리 포용(engagement)으로 대북정책을 구성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남북관계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통계(統計)’는 통치(統)와 계산(計)을 합친 말이다. 멋진 해석이 많이 있겠지만, 경제학도인 나는 ‘통치하기 위해 계산하는 것’이라 설명하곤 한다. 현대 국가는 정책으로 운영되고, 정책은 참조자료를 필요로 한다. 참조자료 중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 바로 통계다. 통계적 결과나 해석이 달라진다면, 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각종 정책을 비롯한 국가적 의사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투표하는 국민들이다. 민주 국가에서는 위대한 한 사람보다 현명한 보통사람들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잘못된 통계에 속지 말아야 한다.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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