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매출이 코로나 전 하루 매출” 벼랑 내몰린 中한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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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원난성 쿤밍시 쑹민현에서 문신효 씨가 운영하는 화훼업체의 직원들이 1, 2월에 팔지 못한 꽃들을 온실 바깥에 내놓고 있다. 문 씨는 "제때 팔지 못한 꽃은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며 "버리는 꽃이 400여만 위안어치"라고 말했다. 문신효 씨 제공
원난성 쿤밍시 쑹민현에서 문신효 씨가 운영하는 화훼업체의 직원들이 1, 2월에 팔지 못한 꽃들을 온실 바깥에 내놓고 있다. 문 씨는 "제때 팔지 못한 꽃은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며 "버리는 꽃이 400여만 위안어치"라고 말했다. 문신효 씨 제공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한 달 매출을 계산해 보니 중국 전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전의 평소 하루 매출 정도밖에 되지 않더군요.”

온대성 재중한국외식협회 회장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베이징(北京) 왕징(望京) 지역에서 규모 750m²(약 226평)의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인 7일 만난 그는 “매출이 30분의 1로 줄었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직원 55명의 월급은커녕 한 달 임차료 20만 위안(약 3420만 원)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월 매출이 떨어졌다.

이날 점심시간대인 오전 11시 반경부터 3시간가량 식당에 머물렀지만 손님은 3팀(6명)에 불과했다. 식당은 한산하다 못해 고요했다. 온 회장에 따르면 평소 이 시간대에는 300명이 몰린다. 이 건물의 다른 중국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웠다. 정문 앞에 체온을 재는 보안요원만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온 회장은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문을 열 생각으로 출혈을 감수했지만 이대로 몇 개월 더 가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난 1992년 중국에 정착한 중국 교민 1세대입니다. 지금은 내가 노력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중국 생활 28년 만에 가장 어려워요.”

그는 “중국의 이동 통제 조치로 직원이 복귀하지 못해 베이징 내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 85곳 가운데 약 20곳만 문을 연 것으로 파악된다”며 “2,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다. 10% 정도는 폐업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암담”


중국 베이징 왕징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온대성 재중한국외식협회 회장이 7일 텅 빈 식당을 바라보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베이징 왕징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온대성 재중한국외식협회 회장이 7일 텅 빈 식당을 바라보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전역을 휩쓴 코로나19발 경제 한파가 현지에서 식당 등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떠나는 한인들이 늘면 자칫 중국 내 한국 교민 사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우 중국한국인회총연합회 회장은 “베이징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칭다오(靑島) 톈진(天津) 등 주요 도시 지역 한인회장들을 통해 알아보니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60% 이상, 서비스업의 50% 이상, 제조업의 30% 이상 한인들이 더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한중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연이어 닥치면서 중국 내 한인 경제가 그로기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주문배달 서비스 앱 ‘메이퇀(美團)’은 10일 자사 배달 주문 통계를 근거로 중국 내 요식업체들의 운영 재개 비율이 55%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베이징 시내에 문을 연 식당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왕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광상 씨는 2017년 사드 갈등으로 입은 피해를 지난해부터 회복했다가 코로나19로 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 하루 매출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사드 때 피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큰 것도 아니었네요. 지금은 어떻게 비용 절감을 해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더 암담한 건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 “사드 때보다 훨씬 어렵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6일 후베이(湖北)성 이외 지역의 대기업 운영 재개율은 90%, 저장(浙江)성 광둥(廣東)성 산둥(山東)성 장쑤(江蘇)성은 95%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업정보화부가 밝힌 중소기업 가동률은 52%에 불과하다. 베이징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허베이(河北)성 싼허(三河)시 옌자오(燕郊)진에서 자동차·가전 생산공정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김영재 씨는 “실제 중국 내 공장 가동률은 그보다 많이 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의 공장은 가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공장이 있는 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봉쇄돼 2개월 가까이 공장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15명 직원들도 공장에 복귀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그는 800만 위안(약 13억7100만 원)어치의 주문이 취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주문이 공중에 날아가면 정말 어려워집니다. 사드 때부터 3년 동안 계속 적자였는데 이젠 매출조차 없이 2개월이 지나가고 있어요. 주문까지 못 받으면 접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베이징한국중소기업협회 부회장인 그는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가장 힘들다”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스, 글로벌 금융위기, 사드 때보다 이번이 훨씬 어렵다. 정말 많은 한인 중소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광저우에서 의류·봉제기업을 운영하는 한인들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광저우 한인 기업들에 회계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를 운영 중인 이민재 씨는 “광저우의 한인 2만5000명 가운데 1만여 명이 봉제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의 1, 2월 공장 가동률은 0%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번 봄 상품 판매가 끊겨 다음 겨울 상품을 준비할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300곳의 컨설팅을 맡아 온 이 씨는 고객사가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서 덩달아 2개월째 매출이 없는 상태다. 그는 “이달 말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그 뒤로는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토로했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의 한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쿤밍(昆明)시 쑹밍(嵩明)현에서 화훼업체를 운영하는 문신효 씨는 얼마 전부터 400여 만 위안(약 6억8000만 원)어치 꽃들을 버리고 있다. 1년 매출인 약 800만 위안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 춘제(春節·중국의 설) 기간인 1월 광저우, 저장 등 대도시에 판매하려 했으나 중국의 이동 통제 조치로 교통이 마비되면서 시기를 놓쳤다.

“제때 팔지 못한 꽃은 품질 문제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어요. 지난달 말 이동 통제가 좀 풀린 뒤 직원들이 복귀해 꽃을 버리고 있습니다. 이달 한 달 동안은 계속 버려야 할 것 같아요. 자식을 버리는 심정이라 마음이 얼어붙었네요.”

이덕호 칭다오 한인회장은 “칭다오 지역에서 소규모 업체를 운영하는 한인들도 공장 가동률이 낮은데도 임차료는 100% 다 내야 하고 직원들 월급까지 줘야 해 문을 닫고 중국을 떠나는 이들이 꽤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급감해 진정세에 접어들었으나 현재 많은 지역에서 이동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 경제적 피해가 여전하다. 산업 생산 등 경제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도 10일 “중국 내 중소기업이 재가동을 해도 사람과 물자 유동이 막혀 있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런민일보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시와 농촌 경계나 소규모 지방 도시에 있고 이곳들의 방역 통제가 매우 엄격해 직원들이 복귀할 수 없다”며 “직원들이 복귀해도 생산을 위한 물자 운송이 어려워 진정한 생산 재개를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중국 현지 한인 업체들이 이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이다.

○ “한국 정부 지원 절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확연히 줄어든 반면 한국의 상황은 심각해지면서 중국인이 한국인에 지나친 공포심을 갖는 것도 한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인 A 씨가 운영하는 베이징의 한 식당은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중국인 손님이 50% 이상을 차지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한국 상황이 악화되기 전인 지난달 중순까지는 중국인 단골손님들이 시내에서 차를 몰고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의 발길마저 뚝 끊겼어요.” 그는 “사드 사태 때도 찾아왔던 손님들인데 지금은 중국인들이 후베이성 우한(武漢) 시민들을 대했던 태도로 한국인들을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 한인들은 “중국 내에서 한국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한국 정부가 찾아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 대출, 법률문제 등 경영 회복과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원우 회장은 최근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에게 중국 현지 한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경영인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장 대사는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정부에서 코로나19 관련 종합 지원 대책을 내놓을 때 중국 내 한인 관련 내용도 다루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민도 한국 경제의 일부입니다.”(문신효 씨) “해외 교민들도 국익에 기여하는 구성원이라는 점을 정부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김영재 씨)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코로나19#재중한국외식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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