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도와주는 고마운 발명품[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7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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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프랑스에 여행 간 사람들이 에펠타워 다음으로 많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은 몽생미셸이라는 수도원이다. 석양이 질 무렵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적인 자태와 바위 위에 세워진 모습은 신도 탄복할 정도다. 마을 입구에는 200년 역사를 지닌 수플레 오믈렛식당(La Mere Poulard)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장작을 사용하며 손잡이가 긴 구리팬으로 진지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요리사로서 20세기 최대의 발명으로 꼽는 것은 코팅팬이다. 오믈렛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팬 사용법을 익혀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오믈렛 팬이 얼마나 잘 길들어 있는지이다. 내가 접시닦이로 일을 시작한 첫날 새까만 오믈렛 팬이 너무 더럽다고 생각해 얼마나 열심히 닦았는지 모른다. 화가 난 주방장은 소리를 지르고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영문을 모르고 떨었다. 다행히 일손이 부족했던 그곳에서 해고되지 않았고 오믈렛 팬을 길들이는 법부터 배웠다. 가볍게 물로만 헹군 뒤 꽃소금을 전체적으로 깔고 식용유를 1cm 정도 붓는다. 12시간 두었다가 연기가 날 정도로 끓인 다음 내용물을 버리고 닦아 사용한다. 오믈렛 전용 팬으로 훗날 내가 오믈렛 만드는 요리사가 되었을 때는 과거의 나 같은 초보 일꾼을 만날까 봐 두려워 사물함에 넣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노동력을 가장 많이 줄여준 기계는 다짐기(푸드프로세서)로 재료를 잘게 썰고 다지며 반죽까지 가능한 기계다. 미국 뉴욕 루테스의 주방장 앙드레 솔트너는 ‘생선무스와 랍스터 크림소스(mousseline quenelles)’로 유명해졌다. 이 요리를 만드는 데 새내기 요리사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동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생선살을 발라 절구통에 찧고 체에 내려 가시나 비늘 등 이물질을 걸러낸다. 가볍고 부드러운 맛도 일품이지만 스푼 2개를 사용해 달걀 모양으로 아름답게 접시에 담아낸다.

내가 주방장으로 일하던 스테이크프릿의 주 메뉴는 블랙앵거스를 사용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었다. 하루 300인분에 곁들이는 감자는 30∼40kg 정도다. 껍질을 벗긴 감자를 감자절단기에 넣고 힘주어 손잡이를 내리면 격자로 된 칼날이 감자를 통과하면서 조각이 만들어진다. 에콰도르 출신의 가브리엘은 온종일 감자에 매달려 일하지만 주문이 항상 밀렸다. 한번씩 가브리엘을 도우려고 필러를 잡고 감자를 까보았지만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인 그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아주 가벼운 Y자형 필러를 사용하는 그는 한 달에 4개 정도를 부러뜨리면서도 불평 없이 일했다. 주위에서 조금씩 도와줬다면 좋았을 텐데 주방 동료들도 힘든 일을 피하는 눈치였다. 나는 영어가 부족한 그를 위해 영어 옆에 스페인어를 추가해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장은 항상 성실한 모습을 보였던 가브리엘을 식재료 관리인으로 진급시켰다. 감자 깎기나 설거지 같은 일을 한다고 영원히 그 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동료들에게 보여준 셈이었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코팅팬#다짐기#푸드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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