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감자탕과 똑닮은 ‘사뎅이’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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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감자국의 감자탕. 석창인 씨 제공
태조감자국의 감자탕.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와인 뚜껑을 따다 코르크가 중간에 부러졌을 때입니다. 일행들이 어쩌나 하는 눈빛으로 지켜보는 중에 스크루를 얌전히 다뤄 깔끔하게 빼내면 환호가 일고 저 역시 작은 희열을 느낍니다. 어렸을 적 학교 앞에서 흔히 사먹던 다슬기도 옷핀으로 살살 돌려서 꺼내 먹는 맛이 쏠쏠했던 기억이 납니다. 감자탕을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돼지등뼈 곳곳에 숨어 있는 살과 그 속의 등골(척수)을 빼먹는 재미 그리고 다 발라 먹은 뒤에 뼈와 뼈가 두 손에 의해 싹 분리가 될 때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감자탕은 감자보다 돼지등뼈가 더 주요한 재료임에도 어찌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돼지의 척추뼈를 감자뼈라고 불러서 그리되었다고도 하지만, 수의해부학에도 없는 말입니다. 예전엔 탕에 감자를 많이 집어넣어 그렇다는 설도 있지만 부재료가 주재료를 제칠 수 없는 노릇이지요.

감자탕과 싱크로율이 99%인 음식이 있습니다. 경기 수원과 화성에서는 이를 ‘사뎅이’라 부릅니다. 애초 사뎅이에는 돼지의 여러 부위 뼈가 다 들어갔었지만 요즘은 등뼈만 넣기 때문에 감자탕과의 차이점이 없어져 ‘일란성 쌍둥이’ 같은 음식이 되었습니다. 사뎅이란 명칭은 얼핏 일본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북한어 사전에 나오는 ‘사등이’에서 유래된 듯합니다. 머리뼈 아래에서 엉덩이까지 33개의 척추뼈를 사등이뼈라고 부르는데, ‘곱사등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문헌을 찾아보니 원래 전라도에서 돼지뼈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고, 전쟁 이후 전국에서 사람들이 인천으로 몰리다 보니 감자탕은 자연스레 인천 음식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이후 서울로 진출하여 돈암동과 응암동을 중심으로 감자탕 동네가 형성되었고 근래에는 전국 곳곳에 프랜차이즈까지 생겼습니다.

치대 예과 시절, 최루탄 가루를 씻어내는 데 감자탕만 한 것이 없다 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았습니다. 그땐 분명히 감자탕과 사뎅이를 혼용했던 기억이지만 시나브로 감자탕으로 통일이 되었네요. 녹두집, 일미집과 같은 학사주점에서 카바이드로 익힌 막걸리에 감자탕을 먹다 취해 기절하는 친구들이 속출했고, 귀가를 하다 근처 신림천변에 떨어져 다쳤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습니다. 술을 마시면서도 다가올 시험이 걱정이지만,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는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지요.

대학 동기들 몇이서 그때를 기억하고자 감자탕의 원조를 넘어 태조임을 주장하는 ‘감잣국’집을 찾았습니다. 깔끔하게 단장한 실내도 마음에 들지만 식당 벽 여기저기의 교훈적이고도 재치 있는 글들을 읽느라 탕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포슬포슬한 감자와 야들야들한 돼지등뼈 살 그리고 맵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순수한 국물을 맛보며 다들 “명불허전이야!”를 외쳤습니다.

그 와중에도 감자탕이란 말보다 ‘사뎅이’라는 친근한 고유어가 더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제가 수원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석창원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 태조감자국=서울 성북구 보문로34길 43, 02-926-7008, 1만5000∼2만8000원
#사뎅이#감자탕#태조감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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