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2030 세상/정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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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쓰인 일기를 본 적이 있다. ‘아침 일곱 시 눈을 떴고, 여기가 병원인 것을 깨달았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태는 좀 어때요?” “아직 뭘 먹어도 지우개나 진흙을 먹는 느낌밖에 안 듭니다. 예전부터 심하게 땀이 나거나 과호흡 증상이 와서 힘들었는데, 가능하면 그것도 고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뭘 먹어도 아무 맛이 안 나는 건 우울증 증상입니다. 3개월에 걸쳐 천천히 병을 치료해 보죠.”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준 사람은 그의 일본인 아내였다.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 도쿄 콘서트에서 우연히 친해져 연락처를 교환한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로 친구가 됐다. 막연히 남편이 한국어를 잘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다기에 무슨 책이냐고 물으니 정신병원에 입원한 내용이라고 했다.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그녀는 별일 아닌 듯 말했다. “옛날 일이야∼. 이젠 괜찮아!”

처음 정신과 치료를 받던 날, “제가 여기 온 거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세요”라고 접수처 직원을 다그쳤던 일화를 통해 그는 말했다. “돌이켜보면 자신에게도 정신병에 대한 일종의 멸시 감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나 역시 오랫동안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미쳤다’ ‘돌았다’ ‘정신 나갔다’. 만약 누군가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 사회에서 모욕으로 불린다면, 그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소수자들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24일 오후 8시 기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8명 가운데 다수가 정신병원 폐쇄병동 입원자다. 그곳의 정신장애인 105명 중 103명이 집단 감염됐고, 첫 번째 사망자는 폐쇄병동에서 스무 해를 넘게 보낸 무연고 환자였다. 만약 우리 사회에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살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제대로 갖추어진 열린 공간의 정신복지시스템이 더 잘돼 있었다면 장시간 갇혀 있던 환자들이 이보다는 적지 않았을까.

발달장애 동생과 여행하고 노래하는 일상을 담은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유튜브 운영자이자 정의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혜영 씨는 23일 입장문을 발표했다.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위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입니다.” 정신장애인문화예술단체 안티카 활동가 목우님도 같은 날 장애전문매체 비마이너에 ‘코로나19 정신병동 사망자, 그들을 위한 진혼곡’이란 글을 투고했다. “우리는 이분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우리와 슬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을 부르고 싶다. 사회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만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의 행간에 숨어 있는 실재에 귀 기울이는 이들을 부르고 싶다. 자신이 놓인 주류적인 입장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이가 아니라 소외되어 있는 타자가 되어 보는 자리에 서 보았던 이들을 부르고 싶다.”

그 부름에 응답하고자 글을 쓴다.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를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조건을 생각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절망도, 희망도, 연민도, 사랑도, 역사도,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신복지시스템#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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