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회사도 업무지속계획이 있나요[광화문에서/김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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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A.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하나?

B. 감염 사태 장기화 시, 수입 및 돌봄체계가 지속가능한가?

C. 자가격리에 대비한 생필품은 충분한가?

식구가 딱 세 명뿐인 우리 집도 고민할 일이 너무 많아서 지난밤 잠을 설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같은 이런 위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어제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해 마트 앞에서 애타게 줄도 섰다.

가정도 끊임없이 위험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기업은 오죽할까. 1월 중순만 해도 SK종합화학, 포스코처럼 중국 우한에 법인이 있는 기업이 주로 비상 상태였다. 당시 이들의 우선 과제는 주재원의 안전 귀국과 본사 확산 방지였다. 이달 초 중국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중국 공장 셧다운이 잇따르자 이번에는 대다수 기업의 공급망과 수출, 내수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부품 공급 지연으로 현대자동차는 한국에서, 크라이슬러는 세르비아에서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끌어올린 24일 현재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의 총체적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임직원 수만 명 중 한 사람 때문에 생산시설이 셧다운될 수도 있고, 사태 지속 시 신용등급이 하락해 자금 경색으로 이어질 개연성까지 생겼다.

이때 빛을 발하는 게 위기 대응체계다. 기업업무지속계획(BCP·Business Continuity Plan)을 재빨리 실행하고 유동성 확보, 주주 및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공급망 다변화 플랜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BCP는 대규모 감염, 자연재해 등에도 기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대응체계 지침을 말한다. 실제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외국계 금융기업은 이달 초 ‘한국 내 확진자 수가 50명이 되면 핵심 부서를 두 팀으로 나눠 다른 공간에서 근무토록 하고, 100명이 넘으면 재택근무를 한다’는 방침을 정해 실천에 들어갔다. 감염으로 인한 핵심 부서의 기능 마비를 막겠다는 취지다. 국내 대기업도 코로나 대응팀을 만들어 시나리오별 대응에 들어갔다. 재무건전성도 계속 확인 중이다. 애플이 글로벌 주요 기업 중 처음으로 굳이 ‘1분기 실적 전망치 달성이 어렵다’고 공식 발표한 것도 주주 소통을 위한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문제는 위기에 대응할 만한 준비도, 자원도 없는 쪽이다. 상당수 기업이 BCP는커녕 당장의 현금 유동성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1000대 기업 중 설문에 응한 152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29.5%가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3일 BCP 표준안을 경제단체를 통해 기업에 배포했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는 데다 한발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싱가포르에서 중소기업 정책을 담당하는 ‘엔터프라이즈 싱가포르’는 지난달에 이미 중소기업 등에 ‘코로나19 BCP’를 전달했다.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결국 위기는 전체로 증폭된다.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구석구석 약한 고리를 찾아내 위기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코로나19#기업업무지속계획#재택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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