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섭다, 일상이 멈췄다”…코로나19 덮친 中현지 르포

  • 신동아
  • 입력 2020년 2월 17일 14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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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3월호]
● 새해 소망은 ‘살아남기’
● 텅 빈 거리, 셔터 내린 상가…거대한 침묵의 시간
● 봉쇄, 격리 조치로 일터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 “이러다 굶어 죽는 거 아닌가” 사스 때보다 심한 공포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은 중국 쓰촨성 몐양시 거리.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은 중국 쓰촨성 몐양시 거리.

약국은 영업을 하지만 마스크 등은 구하기 어렵다(왼쪽).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체온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약국은 영업을 하지만 마스크 등은 구하기 어렵다(왼쪽).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체온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요한 춘절이 지나갔다. 인적 없는 도시에 명절을 반기는 붉은 장식이 요란하고, 텅 빈 마트에 시끄러운 행사 음악만 야단이었다. 재난 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장면이 일상이 됐다. 우한(武漢)에서 시작돼 중국 전역을 넘어 세계로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전혀 낯선 새해 풍경과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새해 소망을 갖는 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생에 대한 의지를 제외한 모든 바람이 의미를 잃었다. 올해 목표는 다이어트도, 수입 늘리기도, 차 사기, 술 끊기도 아닌 ‘살아남기’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감염자 치사율이 약 3%라고 발표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감염자가 사망하는 일이 극히 드문 것도 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사람의 심리적 치사율은 거의 10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일단 걸리면 완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믿는 분위기다.

거대한 침묵
중국 쓰촨성 BOE 사옥. 평소 행인이 많은 거리인데 최근엔 한산하다.
중국 쓰촨성 BOE 사옥. 평소 행인이 많은 거리인데 최근엔 한산하다.

필자는 중국 쓰촨(四川)성 몐양(綿陽)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청두(成都)에서 북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쓰촨성 제2의 도시다. 과학기술 도시로 지정돼 관련 사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BOE, HKC 등 중국 주요 디스플레이 기업이 있어 이들에게 기술 및 장비를 제공하는 한국 협력업체 인원 수백 명이 체류한다. 필자 또한 한 중국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한에서 1100km 넘게 떨어진 이곳 몐양까지 들이닥쳤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몐양시 확진자 수는 2월 13일 현재 22명이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는 이곳 사람들의 삶에서 일상을 빼앗아버렸다. 광장에 모여 춤추던 여인들을 각자 집으로 돌려보내고, 담배 연기와 웃음소리와 마작 패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로 가득 찼던 마작관을 폐쇄시키고, 온갖 맛집으로 빽빽하던 골목을 유령 거리로 만들었다.

도시를 오가던 그 많은 사람과, 공기를 가득 채우던 온갖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출근 시간에 제각기 바쁘게 움직이는 직장인,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 밤 늦도록 환히 불 켜진 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면서 맥주를 마시던 젊은이가 모두 모습을 감췄다. 도로 위 맥락 없는 경적 소리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나는 벽 뚫는 소리, 과일 장수 트럭에서 울려 퍼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도시에는 정적만 남았다.

일상 덮친 공포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붐비던 거리(작은 사진)가 지금은 텅 비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붐비던 거리(작은 사진)가 지금은 텅 비었다.

각자 집에 갇힌 사람들은 이따금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가 며칠 동안 먹을 식료품을 구입하는데, 그 짧은 외출에도 여러 차례 불편함을 느낀다. 나름 ‘안티 바이러스’ 기능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문을 나서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누군가와 이 밀폐된 공간에서 마주치게 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마스크 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하나 빼내고 싶어도 그 단순한 행동이 초래할 치명적인 결과를 떠올리며 평소라면 용납할 수 없었을 간지러움을 참아낸다.

마트든, 아파트든 어딘가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입구에서 경비가 들고 있는 체온계에 이마를 내밀어 열이 있는지 확인받아야 한다. 이때 섭씨 37.3도 이상이 측정되면 코로나19 감염 의심 환자로 분류돼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매번 체온을 잴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든다.

장 보기 무섭게 서둘러 집으로 피신한 후에는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소독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씻고 또 씻는다. 어쩌면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이미 강박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당초 필자는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춘절 연휴를 보낸 뒤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휴가가 끝날 무렵 출근이 일주일 연기됐고, 이후 또 한 번 일주일 연기 통보를 받았다. 현재로서는 언제 다시 회사에 나가게 될지 모른다.

중국에는 현재 이런 사람이 적잖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저마다 지루함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봐도 무엇 하나 좋은 소식이 없고, 영화나 드라마는 하도 봐서 더는 볼 게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많은 사람이 주어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데 집중한다.

위챗, 틱톡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너무 할 일이 없어 이런 것까지 해봤다’는 내용의 경험담이 수두룩하다. ‘너무 심심해서 두루마리 휴지가 총 몇 칸인지 세봤다’ ‘해바라기 씨와 피스타치오 껍질을 이용해 미키마우스를 만들었다’ ‘거실 탁자를 탁구대 삼아 가족들과 탁구를 쳤다’ ‘먹던 라면으로 뜨개질을 해봤다’ 등 집에서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팁을 공유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

다른 한편에는 이런 상황에도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가 사는 몐양의 경우 여러 공장이 연휴에도 생산 라인을 가동했다.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한국인들도 귀국하지 않고 이곳에서 명절을 보냈다. 전국 유명 관광지가 모두 폐쇄된다는 뉴스가 나오고 우한에 있는 교민이 전세기로 구출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도 그들 중 상당수는 중국 기업 요청에 따라 불안한 출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근 장비 셋업을 시작한 한 중국 회사는 한국 업체 소속 사람들을 수시로 호출해 뒷말을 낳았다.

2월 10일 중국의 춘절 연휴가 공식적으로 끝난 만큼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 경우 혹시라도 감염 위험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적잖다.

코로나19의 위력은 이미 2003년 사스를 훨씬 넘어섰다. 코로나19는 춘절에 전국 각지로 이동한 사람과 함께 기차, 배, 비행기를 타고 사방천지로 옮겨졌다. 그 여파로 거리의 식당은 거의 다 문을 닫았고, 일부는 배달 서비스만 제공한다. 카페, 미용실, PC방, 헬스장, 학원, 영화관 등도 모두 영업 중단 상태다. 택배회사도 대부분 휴업했다. 초·중·고교 개학 시기는 연기됐으며, 지역 간 인구 이동을 최소화하고 타 지역에서 유입되는 인원을 차단하고자 호텔도 기존 투숙객 위주의 제한 영업을 하고 있다. 병원, 약국, 슈퍼, 마트 등은 문을 열지만 마스크나 소독약은 재고가 없어 구할 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 확산을 막고자 중국 정부는 도시 봉쇄와 격리 조치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모두 꼼짝없이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추가 감염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잠복기 14일을 지나는 동안 증세가 드러난 확진자만 치료하면 코로나19를 진압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봉쇄, 격리, 굶주림

1월 23일 처음 봉쇄 조치가 내려진 우한 외에도 현재 수십 개의 도시가 추가로 봉쇄됐다. 앞으로도 대상 도시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2월 8일에는 인구 1300만의 선전(深)시가 봉쇄됐는데 그 직전 많은 사람이 홍콩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홍콩도 위험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도시가 봉쇄된 경우에는 주민 전체가 자가 격리를 실시해야 한다. 격리 중에는 외출 횟수와 외출 시간이 제한된다. 이처럼 봉쇄된 지역은 식료품, 의약품 등 물자가 부족해 지역민이 큰 불편을 겪는다고 들었다.

봉쇄되지 않은 도시들도 대부분 자체적으로 격리 기준을 갖고 있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 왔거나, 감염자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최단 7일부터 14일까지 자가 격리를 하도록 한다. 특히 우한이 있는 후베이(湖北)성을 비롯해 저장(浙江)성, 선전시, 광저우(廣州)시, 원저우(溫州)시 등의 ‘고위험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더욱 철저한 관리 감독을 받는다. 거주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온 경우에도 모든 주민이 7일 이상 격리된다.

그럼에도 코로나19는 전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이러스 잠복기가 최장 42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현장에서는 도시 봉쇄와 자가 격리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봉쇄 조치와 더불어 중국 각 지방 정부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춘절 연휴를 연장했다. 원래 1월 30일까지였던 연휴가 일주일 넘게 길어졌다. 그러나 2월 10일부터는 대부분 지역에서 업무를 점진적으로 재개하는 분위기다.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업무를 정상화하면 지금까지 감염을 방지하고자 시행한 도시 봉쇄와 자가 격리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감염자가 전보다 더 늘어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많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모든 산업이 마비된 상태가 장기화하면 중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업무 정상화가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굶어 죽을 확률 100%
1월 28일 중국 우한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인적 드문 거리를 걷고 있다. [뉴시스]
1월 28일 중국 우한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인적 드문 거리를 걷고 있다. [뉴시스]

사람들 사이에선 ‘바이러스 치사율은 3%밖에 안 되지만, 돈이 없어 굶어 죽을 확률은 100%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얘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경제 상황이 국영기업이나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크게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계약직, 프리랜서, 자영업자에겐 악몽과도 같다. 아파트 대출금이나 자동차 할부금, 가게 임차료, 월세 같은 비용은 코로나19 사태에 상관없이 매달 똑같이 청구된다. 수입이 한 달이라도 안 들어오면 큰일이다.

그동안 춘절 연휴가 갈수록 짧아진다고 불평하던 중국 지인들은 이번엔 끝도 없이 늘어나는 휴가에 마음을 졸였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양모(26) 씨는 티베트에서 1년씩 계약직으로 일한다. 그가 춘절을 맞아 고향 쓰촨성에 와 있는 사이 전염병이 퍼졌고, 그는 티베트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가 몇 달 지속되면 양씨는 쌀을 사거나 휴대전화 요금을 낼 수도, 심지어 전기료를 낼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양씨는 이렇게 절규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아도 수입이 없는 채로 몇 달이 흐르면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이다. 코로나19는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떠나 모든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이끌고 있다.”

고향이 충칭인 하모(27) 씨 상황도 심각하다. 충칭은 우한에 이어 코로나19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이다. 춘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한 그는 몐양에 있는 회사로 복귀할 방법이 묘연하다. 그가 사는 마을에 확진자가 두 명 발생해 마을 전체가 봉쇄됐다. 그 바람에 주유소도 영업을 중지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이 통제됐다. 마을을 벗어나려면 회사가 발급한 출근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데, 하씨가 몸담은 회사는 얼마 전 충칭 방문자의 몐양 진입을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그는 “정 안되면 고향에서 농사짓고 살아야겠다”며 씁쓸하게 얘기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코로나19는 이토록 엄청난 기세로 세상을 잠식했으나, 그에 관한 정보는 여전히 상당 부분 벽 너머에 갇혀 있다. 이제 불행한 소식을 오직 숫자로만 표시되는 뉴스로 듣는 데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졌다. 그래서일까. 다른 도시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점차 무뎌지고 있다. ‘인터넷 만리장성’에 둘러싸여 있는 대부분의 중국 네티즌은 중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뉴스와 이미 검열받고 SNS에 올라오는 글 외에는 정보를 접할 길이 없다. 그 벽을 넘나들려면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질병은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죽게도 만든다. 또한 우리를 궁핍하게 하고 나약하고, 두렵고, 무력하게도 만든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세상 모든 나쁜 것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야기의 결말을 알 듯, 그 마지막엔 항상 희망이 남아 있다.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벽에도 빈틈이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지독한 바이러스라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어서 따뜻한 봄이 오기를, 역사에 남을 가장 어두운 새해를 겪은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이 시간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붐비는 거리 속 풍경에 스며들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글·사진 최유정 중국 쓰촨성 교민 chloe2378@naver.com

[이 기사는 신동아 신동아 2020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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