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문화정치 한다며 경찰예산 왜 늘리나’ 총독부 허구 통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0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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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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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920년 4월 8일부터 ‘창간호’ 문패를 떼고 일상적인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면 머리기사인 사설이 ‘조선총독부 예산을 논함’이었습니다. 문화정치를 표방해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대체한다던 조선총독부의 큰소리가 허언이었음을 숫자로 증명해 총독의 시정을 비판하는 것으로 포문을 연 것입니다.

경성지방법원 앞을 지키는 제복 입은 순사. 법원 외벽에는 ‘치안유지사건 공판 방청 금지’라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경성지방법원 앞을 지키는 제복 입은 순사. 법원 외벽에는 ‘치안유지사건 공판 방청 금지’라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4월 10일까지 사흘 연속 이어진 이 사설을 들여다보면 과연 1920년 신문인가 싶게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항목과 숫자만 바꿔 요즘 상황에 대입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짜여진 경제사설의 원형이라 할 만합니다. △세금과 예산이란 무엇인지 △예산의 심사와 집행, 결산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연도별로 각 항목이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떻게 변했는지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빠져들게 됩니다.

사설의 앞부분은 조선총독부가 예산을 자의적으로 편성해 집행하고, 감독도 받지 않는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납세자인 우리 민중의 의사를 반영할 통로는 전혀 없이 총독부가 예산을 임의로 편성해 임의로 집행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라고 통박했습니다. 물론 일본제국의회가 조선총독부의 예산을 협찬(동의)하고 결산보고도 받지만 의회는 조선인의 기관이 아니고, 의원 또한 조선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수정이나 논의도 없이 원안대로 통과할 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다음엔 본격적으로 숫자가 나옵니다. 1918년과 1919년 조선총독부의 총예산과 경찰비(헌병비, 경무비, 감옥재판소비), 교육산업비(제 학교비, 권업모범장비, 수역혈청비) 실태를 취재한 것이지요. 경찰비는 780만5186원에서 873만79원으로 11.9% 늘어난 반면 교육산업비는 91만1410원에서 120만7962원으로 32.5% 증가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3·1운동 이후 헌병과 경찰을 유지하고 우리 민중을 잡아다 재판하는 곳에 쓴 돈보다 교육과 산업장려에 쓴 돈이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증가율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각 항목의 ‘비중’에 주목합니다. 교육비와 산업비를 합친 금액이 1918년에는 총예산의 71분의 1 미만이고, 경찰비의 8분의 1 미만인데 이것이 1919년에는 각각 64분의 1 미만, 7분의 1 미만이 됐다는 겁니다. 단순히 증가율만 보면 왜곡이 생깁니다. 예컨대 사장의 연봉이 5억 원에서 6억 원으로(20% 상승),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이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할 때(50% 상승) 이를 소득의 평준화에 한발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920년 예산을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경찰비가 1378만6000원으로 1년 새 57.9% 늘어난 데다, 일본국회의 해산으로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조선총독부가 임시 경찰비 235만여 원을 ‘책임지출’한 반면 교육산업비는 집행을 한없이 연기했지요. 사설은 이를 놓치지 않고 ‘데라우치(寺內政毅),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총독 시절에도 보지 못한 일’이라고 비난하고, ‘현대 정치는 예산정치이니 예산의 전횡은 곧 정치의 전횡’이라며 총독부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의 예산 전횡과 팽창하기만 하는 경찰비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930년 11월 13일자 1면 사설 ‘경찰비는 왜 삭감할 수 없나’에서는 조선총독부가 다음해 예산에서 행정비를 삭감하기로 하면서도 유독 경찰비만은 확장하기로 한 것에 주목해 ‘이 방대한 경찰비를 삭감해 아동교육비에 충당하면 문맹률이 8할이 넘는 비참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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