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생기는 하루, 뭘 할까[2030 세상/도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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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딸의 출생이 임박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은 2월 23일이다. 초산의 경우에는 대개 실제 출산일이 예정일보다 늦다고 하니, 아마도 내 딸을 만날 수 있는 날짜는 2월 마지막 주 어느 날이 될 듯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2월 달력을 보다가, 낯선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존재는 바로 윤년에 생기는 2월 29일이다.

재미있게도 2월 29일은 법에 명문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천문법(법률 제14906호)은 제2조 4호에 ‘그레고리력이란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하는 역법 체계로서 윤년을 포함하는 양력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조 제5호에 ‘윤년이란 그레고리력에서 여분의 하루인 2월 29일을 추가하여 1년 동안 날짜의 수가 366일이 되는 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작년은 1년이 365일이었지만, 올해는 1년이 366일이다. 올해는 작년과 똑같이 살아도 공짜 하루가 더 생기는 셈이다. 공짜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다. 이와 비슷한 고민은 어릴 적 많이 해봤는데, 100문 100답 놀이를 하다 보면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꼭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 아내의 남편으로서, 곧 태어날 딸의 아버지로서, 의뢰인의 변호인 또는 소송대리인으로서의 각 입장에서 필요한 하루만 떠올릴 수 있을 뿐, 그런 역할을 배제한 날것 상태의 내가 원하는 하루를 생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공짜로 하루가 더 생기는데도 무엇을 할지조차 정하질 못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일단 아내에게 올해 공짜 하루는 무조건 나를 위해 보내겠노라고 선언했다. 아내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면서, 나머지 365일은 자기에게 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불공정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난 올해 공짜 하루를 나를 위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두근거려서 매일매일 소풍 같았던 20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유려해지는 과정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거침없이 미끈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재단하고 희생한다. 대다수가 살아가는 삶과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멋진 분들도 계시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반인은 그렇게 살기 어렵다. 그래서 유려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숙명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우주가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굳이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 4년마다 베푸는 공짜 하루 정도는, 1년 365일 유려해지기 위해 발버둥 쳤던 자신에게 선물했으면 좋겠다. 영화 ‘신세계’에서 극 중 인물 이중구가 했던 “어이, 거기 누구 담배 있으면 하나만 줘라. 뭐,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라는 대사처럼, 4년 만에 돌아오는 공짜 하루 정도는 오롯이 자신을 위해 써도 괜찮지 않을까.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2월 29일#공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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