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부동산 정책[횡설수설/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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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당시 ‘버블세븐’이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집값에 거품이 낀 7개 지역이란 뜻으로,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 용인시, 안양시 평촌을 가리켰다. 연이은 정부 대책에도 집값이 폭등하자 청와대는 2006년 6월 “집값이 많이 오른 이들 7곳은 거품이 낀 것”이라고 했다. 이후 버블세븐은 노무현 정부의 주 타깃이 되었지만 집값은 더 올랐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부동산 매매 허가제’ 발언에 대해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어제 라디오에 나와 “검토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시장경제에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매매 허가제가 강 수석 개인의 의견이었는지, 실제로 청와대 내 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청와대 수석이 하루 만에 주워 담을 폭탄 발언을 한 것은 시장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냉탕’ ‘온탕’을 반복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이 급등하자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30여 차례나 대책을 쏟아냈다.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 종합부동산세 같은 굵직한 규제들이 이때 다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정부의 완패였다. 노무현 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 값은 57%, 전국은 34% 뛰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고 공언한 노 전 대통령이지만 “부동산 문제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며 실패를 자인했을 만큼 부동산은 난제(難題)였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그린벨트에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공급 확대 정책이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내 임기 후반기엔 건설 경기가 과도하게 추락했다. 부동산 경기 냉각으로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부동산 매매 허가제는 자유시장경제 국가는 물론이고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거의 시행된 적이 없다. 호주에서 일부 도입된 적이 있지만 그 대상은 외국인이었다. 헌법상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많고 시장 왜곡을 부추길 수 있어 대다수 전문가는 도입에 반대한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닷물은 절대 먹어선 안 되는 것처럼, 정부가 다급하다고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위헌적 정책까지 섣불리 거론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긴다. 정책이 실패했으면 정책방향이 올바른지 짚어보고 고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방향을 고집하며 더 황당한 정책을 내놓는다. 시장이 뭔지 아는 이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제 매매 허가제 발언에 대해 시장이 어이없어하며 보인 첫 반응은 “허가제 되기 전에 강남 집 사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였다고 한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노무현#버블세븐#강기정#부동산정책#12·16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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