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계[이준식의 한시 한 수]〈4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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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낳아 글공부 시킬 필요 없으니 / 투계와 경마가 공부보다 낫다네. 가(賈) 씨네 어린 아들, 나이는 열셋, / 전에 없던 부귀영화 한껏 누리네. 솜씨 좋게 투계 부려 반드시 승리했고 / 수놓은 비단옷 입고 황제 수레 뒤따랐네. 그 아비가 장안 천리 밖에서 목숨을 잃자 / 호위들이 연도로 나와 상여 수레 보좌했지. (生兒不用識文字, 鬪鷄走馬勝讀書. 賈家小兒年十三, 富貴榮華代不如. 能令金距期勝負, 白羅繡衫隨軟輿. 父死長安千里外, 差夫持道挽喪車.) ―‘투계 신동의 노래(神鷄童謠·신계동요)’ 당대 민요

투계는 기원전부터 유행한 중국의 전통 오락. 특히 당 현종은 계방(鷄坊)을 설치하여 쌈닭 수천 마리를 사육했고 장안에서 대규모 투계 대회를 벌이기도 했는데 정월 대보름, 청명과 한식, 중추절에 벌어지는 대회에는 수많은 백성을 동원함으로써 만천하에 태평성대임을 과시했다. 민간에도 투계 열풍이 몰아쳐 부호 중에는 거금을 들여 대량의 쌈닭을 구입하기도 했고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시에 등장하는 열세 살 소년의 이름은 가창(賈昌), 그는 투계 재능 하나로 일약 황제의 총애를 받아 부귀영화 다 누렸으니, 고관대작의 자제가 부럽지 않았다. 현종이 태산으로 봉선(封禪·황제가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는 의식) 행차에 나섰을 때 가창도 투계 삼백 마리를 데리고 수행했다. 이때 행차에 따라 나섰던 그의 부친 가충(賈忠)이 태산 아래서 죽음을 맞았는데, 황제는 호송 인원을 붙여 장안까지 운구토록 했다. 투계와 경마는 잡기이자 유희, 게다가 흔히 도박으로도 이용되었기 때문에 시에서 이를 장엄한 황제의 봉선 행차와 연관지은 건 황제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다. 이백도 “길에서 만난 투계꾼, 의관과 수레가 어찌 그리 번쩍이던지?/그 콧김은 무지개도 날려버릴 기세, 행인들은 하나같이 벌벌 떨고만 있네”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투계#계방#가창#황제 총애#고관대작 자제#현종#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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