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들[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1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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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산책길에 한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날 때였다. 단지 내에는 ‘어린이 승강장’이라고 적힌, 버스 정류장처럼 꾸민 간이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 승강장에 어린이는 없고 할머니 네 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그 무렵이 오후 4시쯤이었으니까 할머니들은 어린이집 다니는 손주들의 하원을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 장면이 딱히 낯설지 않았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에서도 손주의 하교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따금 할아버지도 있지만 주로 할머니들이 먹고살기 바쁜 부모를 대신하는 편이다.

그 할머니들은 대부분 지난 세월 남편과 자식과 시가 식구 뒤치다꺼리에 충분히 희생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영·유아 보육정책이 아무리 보완되더라도 현재로서는 집집마다 노인 인구를 돌봄 노동에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중 몇몇은 오히려 자신이 돌봄 노동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앓는 소리 할 여유가 없다. 자식 세대의 노동환경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성의 육아휴직조차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주변에 믿음직한 보육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를 온종일 맡길 수 없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부모와 보내는 시간보다 조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노인 인구의 돌봄 노동도 엄연한 경제활동이지만 고용주가 하필 금쪽같은 내 새끼라서 정당한 대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국가는 공공보육의 한계를 이처럼 신화 속 유니콘 같은 모성애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아내와 나는 둘 다 프리랜서여서 마음껏 무급 육아휴직을 누릴 수 있었다. 그 길로 은퇴하는 줄 알았지만, 양가 부모를 돌봄 노동에 동원할 일은 없었다는 얘기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전쟁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런 아내와 내가 안돼 보였는지 한번은 장모님이 먼저 아이를 맡아주겠다며 단둘이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곧바로 짐을 쌌고,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채 한밤중에 무작정 안면도로 떠났다. (아, 그때의 해방감이란!) 떠나기 전 장모님은 홀가분하게 쉬다 오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부리나케 전화하셨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간밤에 한숨도 못 주무셨다는 장모님 말씀에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입장을 바꾼 장모님이 대번 이해됐다. 그만큼 돌봄 노동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돌이켜보면 앞서 말한 어린이 승강장은 얼핏 연극 무대 같았고, 할머니들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같았다. 그 연극의 결말은 보지 못했지만 할머니들이 기다리던 고도는 제시간에 맞춰 왔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제시간에 맞춰 올 것이다. 눈에 넣어도 조금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고도가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매일 같은 시간 할머니들 품에 달려와 안길 것이다. 그게 마냥 축복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권용득 만화가


#어린이 승강장#공공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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