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더 고차원적으로 접근해야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7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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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제협력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주제도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북 경협을 침체된 남한 경제의 돌파구(breakthrough)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지난 8월 있었던 청와대 수보회의에서 대통령이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밝힌 것 또한 경협에 대한 오해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물론 남북 경제협력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 경협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경우 남은 평화를 이루어 통일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고, 북은 오랜 침체를 딛고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 경협이 즉각적으로 남한에 경제성장의 부스터를 달아 주는 것은 아니다. 남북 경협으로 인해 남한이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이 우리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북측의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전혀 효력이 없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의 2.5%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들이 사도록 하려면 가격을 일부러 낮추어 가면서까지 팔아야 하는데,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손실이다. 아니, 정부가 강제하지 않는 한 북한에 상품을 판매할 기업이 없을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과 같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125개 기업들의 절대다수가 섬유·기계금속 등의 경공업이었다. 열악한 교육과 보건으로 인한 북한의 낮은 인적자본을 고려할 때, 현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해낼 수 있는 노동은 단순 작업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공업의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단 4.5% 남짓에 불과하다. 즉, 남북 경협으로 이익을 보는 기업들이 분명 있으나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남한이 북한의 발전소·교량·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야 할 금액들을 생각하면 결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할 수가 없다. 남북 경협으로 남한 경제가 강력한 이득을 본다는 일각의 주장은 허상이다. 남북 경협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정책이다. 남한에게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한의 입장에서는 남북 경협을 반대해야 할까? 아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남북 경협을 추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경제적 효과가 아닌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므로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개성공단은 우리 국민경제에 유의미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대신, 오히려 평화와 통일의 견지에서 이는 적절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 경협의 주요 기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경제적 상업성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먼 훗날에 주요한 평가기준이 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남북 경협을 추동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경제적 상업성을 생각한다면 북한보다 다른 나라와 경제협력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둘째는 남북관계의 관리이다. 남북관계의 경색 시,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로 남북 경협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단 건설은 남북관계에 매우 유의미한 정책변수로 활용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한다고 했을 때, 우리 정부는 공단 가동을 중지할 수 있다. 이 경우 종사하는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권에 대하여 큰 불만을 가지게 될 수 있다. 경협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 경협을 통해서 남한은 북한을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바로 미래의 통일을 대비하여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특히 통일을 위한 정치적 제약을 만족시켜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지향적인 사람들이다. 통일이 성공하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주민들과 가능한 한 동등한 삶의 양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고 하면 남한이 북한에 복지 지출 등으로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은 막대할 것이다. 이 격차를 줄이는 일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KDI 이석 박사에 따르면, 통일시점에서 북한의 초기 자본이나 소득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 번째 목표를 위한 남북 경협은 북한 노동의 양을 증가시키고 질을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시뮬레이션 결과, 통일비용을 감소시키는 데는 노동의 증가와 개선이 자본·소득 증가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 후 북한 출신 노동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키는데 개성공단 같은 제도가 효과를 낼 수 있다. 향후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당한 생산성을 낼 수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남한 기업들이 진출해 북한 주민들을 고용한다면, 학습효과에 의한 북한 주민들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자본주의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트레이닝을 받는 셈이 된다. 남북 경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미시적 수준의 접근이다. 경협은 대규모 생산시설의 건설보다도, 북한 주민들과의 접면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적절하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정민·김병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조건일 때 남한에서 오래 거주한 탈북민일수록 소득이 더 높다. 구체적으로는 남한에 입국한 지 1년이 지날 때마다 소득이 4.3%씩 증가한다. 또한 북한에서의 암시장 참여 등이 남한에서의 경제적 성과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참여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소득이 15% 정도 더 높다. 이 사실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 더 많이 동화될수록 생산성이 상승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생산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시장을 더 경험할 수 있다면, 노동생산성은 향상될 수 있다. 이는 통일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한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남북 경협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잘못된 근거로 경협을 추진할 경우,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과 어긋나 남북 경협 자체의 원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 정직하고 냉정하게 남북 경협의 기능을 잘 따져보아야 한다. 경제 문제만 보는 일차원적 시선 대신, 남북한의 관계와 통일까지 포함한 고차원적 시각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분명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유권자로서 우리가 관련 정책들을 심도 있게 평가해야 할 이유이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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