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실패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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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재 전북대 대외협력부총장
이귀재 전북대 대외협력부총장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년들의 실패 경험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은 ‘경제 속도전’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실패를 인정하는 데 인색했고, 명백한 실패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으로 가장하고 장식하는 일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핀란드는 10월 13일을 ‘실패의 날(Day for Failure)’로 정해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축하한다.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고, 다가올 성공을 믿는다는 기원이 담긴 행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월 광화문광장에서 ‘실패박람회’가 열렸다.

실패의 문화가 존중받아야 할 대학은 정작 형식적 성공에만 집착하고 있어 아쉽다. 한국 대학은 연구와 국가 과제 수행 등 실패의 가치가 중요한 전문 분야에서도 여전히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학에서의 실패는 곧 탈락과 패배를 의미하기에 ‘의미 없는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많다. 평소 필자는 실패 프로젝트가 정착돼야 대학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업이 못 하는 장기 연구를 수행해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데 여기서 실패는 병가상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달 전북대와 중국 베이징대의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대학의 실패 프로젝트를 엿볼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대학 연구비의 10% 정도를 실패할 연구 과제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실패 연구를 중시하는 이유는 성공이 확실한 연구는 독창성이 부족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대학은 실패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연구는 실패의 과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대학이 창조의 공간이 되려면 교수와 학생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에 나서는 문화가 정착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작은 성공에 집착하면 책임은 면할 수 있겠지만 큰 성공에는 다가서기 어렵다. 정부, 지자체, 대학이 실패 프로젝트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 실패 프로젝트는 미래를 위한 성공 과제다.

이귀재 전북대 대외협력부총장
#스타트업#중국#실패#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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