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품격[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17〉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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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린 아들이 거지들을 가리키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구걸을 업으로 삼는다고 말하자 “그들의 마음을 읽는 것은 네 일이 아니다. 네 일은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라며 꾸짖었다. 또한 그는 노동자나 가로 청소부가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고급 양복을 입었으면서도 땅바닥에 앉아 한두 입 먹고,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접시 밑에 지폐를 슬그머니 밀어 넣고 맛있게 먹었다며 일어서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의 품격이랄까.

그는 이전에 리비아 장교였다가 강제로 전역을 당하고, 정권의 볼모가 되어 말단 외교관으로 유엔 본부에 잠시 파견된 적이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첫 출근을 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눈앞에서 대형 트럭에 치여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그 자리를 피할 만도 한데 그는 살과 뼛조각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하더니 도로 위에 놓인 ‘시신의 몸통 옆에 경건한 자세로 갖다 놓았다’. 죽은 사람, 아니 생명에 대한 예의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그러한 품성을 지닌 사람을 가만두지 않았다. 카다피 정권은 그가 반체제 활동을 하자 1990년 이집트 카이로로 피신해 살고 있던 그를 납치해 아부살림 감옥에 가뒀다. 아내와 두 아들은 그를 영영 보지 못했다. 1996년 아부살림 감옥에서 1200여 명의 정치범과 함께 학살당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독재정권은 시신조차 가족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와 가족에게서 애도를 받고 애도를 할 권리를 박탈했다. 42년 동안 리비아를 통치한 카다피와 그의 정권이 결여한 것은 품격이었다.

‘남자들의 나라에서’라는 소설을 썼고 2017년에 회고록 ‘귀환’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가 히샴 마타르가 행방불명된 그 사람의 아들이다. ‘귀환’은 아버지를 찾아 헤맨 몇십 년간의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그래도 그것이 아들에게는 위로라면 위로였다. 적어도 그 기록 속에서는 아버지가 살아 있으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카다피#귀환#리비아#히샴 마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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