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눈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16〉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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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 중에 이 곡을 구상하며 엄청 울었다.” 차이콥스키가 1893년 2월,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던 말이다. 그때 구상했던 음악이 그의 마지막 곡이 된 교향곡 6번 나단조였다. 이제는 ‘비창’이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곡이다.

그가 같은 해 10월 28일 그 곡을 직접 지휘해 초연을 하고 9일 후에 죽었으니 무엇이 그를 울게 만들었는지 알 길은 없다. 쉰셋의 이른 나이에 죽은 내막마저 확실하지 않다.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성적 지향과 관련된 무성한 소문들과 압박감 때문에 자살했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작곡가의 울음과 ‘비창’의 어두운 색조가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이 곡을 제대로 해석하는 건 그가 처했던 심리적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야 가능해진다. 지휘자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에서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장한나가 ‘비창’을 해석할 때 차이콥스키의 폭풍 눈물과 당시에 쓰인 편지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다. 그녀는 음표 하나하나에 작곡가의 열정, 고통, 희망, 절망이 배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번역가에 비유한다. 작가의 의도를 헤아려 언어로 옮기는 번역가처럼, 작곡가의 의도를 제대로 짚어 음악으로 재현함으로써 작곡가에게 봉사하는 게 지휘자의 임무라는 것이다.

장한나가 최근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차이콥스키가 ‘비창’을 작곡하며 흘렸을 눈물과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꼈을 절박한 마음을 음악에 담아 한국 청중에게 전달하려 했다. 그러면서 차이콥스키가 음악이라는 형식에 투영한 슬픔과 청중이 느끼는 존재론적인 슬픔이 공명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장한나가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 재현하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위로를 받았을지 모른다. 슬픔에서 슬픔을 위로받는다고나 할까. 음악이 가진 변함없는 기능 중 하나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차이콥스키#비창#심포니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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