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장수 총리 아베[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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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전쟁을 일본의 침략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3년 옥살이를 한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가 옥중 ‘단상록’에 썼던 구절이다. 외조부인 기시 전 총리의 정치 신념을 이어받은 아베 신조 총리는 “도쿄 전범재판은 승자의 논리”라며 일본이 ‘평화 헌법’의 족쇄에서 벗어날 것을 외치고 있다. 아베가 20일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됐지만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아베 총리의 총 재임 일수는 20일로 2887일. 이토 히로부미가 1885년 초대 총리에 취임한 이래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장본인인 가쓰라 다로 전 총리의 2886일이었다. 2012년 12월 다시 총리가 된 아베는 내년 8월이면 작은외조부 격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7년 8개월 연속 재임 기록을 깰 수도 있다. 2006년 ‘전후 세대 첫 총리, 51세 최연소 총리’에 이어 여러 기록을 추가해가고 있는 것이다. ‘취업률 120%’라는 말이 나오는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바탕으로 참의원과 중의원 6차례 선거에서 7년째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9월이 임기 만료지만 당 규칙을 바꿔 4연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장기 집권의 그림자도 짙어져 간다. ‘스트롱 총리’ 말에 토를 달지 못하고 공무원들이 지시대로 움직이는 ‘손타쿠(忖度·알아서 헤아림)’, 내각을 제치고 총리 관저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등 주요 정책을 주도하는 등 권력집중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각료와 자민당 주요 인사들의 망언과 기강해이도 잇따르고 있다. 총리 자신도 도쿄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여는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역구민을 대거 초청해 전야제 비용까지 지불한 ‘사쿠라 스캔들’로 시달리고 있다. 누적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소비는 살아나지 않는 ‘재정발(發) 거품’ 지적도 나온다. 아베피로증이다.

▷아베 총리는 2006년 10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등 친한(親韓) 행보를 보였으나 2차 내각 때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보수 우익의 실체를 드러냈다. 최대 극우 단체 ‘일본회의’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아베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자 정한론의 원조인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고 해왔다.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 다로,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정치적 후계자들이며, 아베의 현 지역구인 야마구치(옛 조슈)현 출신들이다. 근대 일본을 한반도와 동남아 침략으로 이끌었던 ‘우익 DNA’가 아베를 통해 어떻게 발현될지 주변국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아베 총리#일본 총리#장기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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