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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와 업경대[동아광장/최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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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와 업경대[동아광장/최재경]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입력 2019-11-19 03:00수정 2019-11-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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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者 행적 재생 염라대왕 거울처럼… 휴대전화엔 개인의 삶 낱낱이 담겨
포렌식 등 첨단 수사기법 무장한 檢, 실체적 진실 규명과 사생활 침해 방지
두 상반된 가치 조화시키는 개혁 이뤄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울긋불긋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낙엽이 거센 비바람에 떨어져 보도 위를 뒹굴고 있다. 갑작스레 싸늘해진 대기가 벌써 겨울이 왔다고 외치는 것 같다.

지난주에 사무실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만든 2020년 휴대용 수첩이 배달되었다. 어느덧 올해가 저물고 연말이 왔다는 신호다. 작년에 받은 2019년도 수첩을 꺼내 보니 외피는 너덜너덜해졌고, 그간에 적은 일정과 메모가 어지럽게 적혀 있다. 지난 한 해가 이 수첩에 다 들어 있는 듯하다.

모임에 참석했다가 다음 일정을 잡을 때가 되면 참석자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수첩과 펜으로 약속을 메모하던 사람들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가끔 드물게 수첩과 전화기에 일정을 두벌 쓰는 사람을 보면 딱하기도 하고, 이제는 멸종해버린 공룡을 보는 느낌이 든다.


금년 하반기에는 검찰 개혁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연말도 되고 날씨가 추워졌으니 검찰 개혁 찬반을 외치며 길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겠지, 아니, 줄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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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 특히 수사 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사는 과거의 사건을 조사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법률을 적용해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형사 사법 절차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정한 법 적용이 수사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수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복원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이고, 고고학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유무죄를 가리기 위해 진상을 밝히려면 증거, 즉 증인과 물증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사람의 진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자백이 증거의 여왕으로 군림했기에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고문이 허용되던 시대도 있었다.

인권이 신장되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고문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상대적으로 객관적 물증의 중요성이 커졌다. 서류에 적힌 내용과 흉기나 장물 등 물건의 존재가 물증이다. 수사 과정에서 물증의 확보는 압수·수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증은 사람이 쉽게 없애거나 조작할 수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거나 소멸되기도 했다. 사건이 오래되면 진상 규명이 어려워지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사적 책임 규명과 심판이 어려워지면 인간의 법정에서 신의 법정으로 심판대가 옮겨진다고 믿었다. 그것이 공소시효 제도의 취지였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진보로 시대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수십억 년 지구의 역사를 되살릴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 휴대전화 포렌식이나 유전자 감식, 감청 등의 첨단 수사 기법은 시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게 되었다.

경찰이 수사가 종결된 옛날 사건, 소위 콜드케이스(cold case)의 증거물을 최근의 과학 수사 기법으로 검증해서 30여 년 전 발생했다가 미제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냈다.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진범의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미궁에 빠졌던 진실이 밝혀졌기에 피해자 유족들의 원한도 조금은 풀렸을 것이다. 특히 8차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한 윤모 씨가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밝힐 수 있다면 그 이상 경찰의 쾌거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개인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삶의 모든 흔적이 기록, 보존된다. 기기를 바꾸거나 없앤다고 해도 클라우드 포렌식으로 과거의 문자메시지나 기록을 복구할 수 있다고 하니 숨을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후에 생전의 삶을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명부전(冥府殿)에는 업경대(業鏡臺)라는 거울이 있다고 한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 염라대왕의 법정에 있는 업경에는 망자의 과거 행적이 그대로 재생된다.

휴대전화는 개인의 인생이 그대로 들어 있기에 현대판 업경(業鏡)이자 항공기나 선박의 블랙박스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범죄가 아니라도 숨기고 싶은 사적 비밀과 추억까지 온존되어 있기에 개인의 일기장과 마찬가지다.

삶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검찰의 수사 관행도 점검해 볼 때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실체적 진실의 규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수사 과정에서 인권 존중, 특히 사적 비밀의 침해를 방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일견 모순되는 두 가지 가치의 조화 도모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포렌식#과학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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