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편법투자 -DLF로 얼룩진 사모펀드… 규제가 해결책일까[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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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든 ‘사모펀드 규제’ 논란… “부동산 몰린 돈, 자본시장으로”
가입한도 낮추며 시장 키웠지만 공직자들, 윤리법 규제 안받자
주식 직접투자 등 허점 파고들어 … 소비자 보호 미흡한 상품도 봇물
금감원, PEF 탈세 등 점검 검토… 금융위도 “정책 재점검 필요”
금융업계 “기업 자금수혈 공헌 커”… 규제 강화가 ‘교각살우’ 될까 우려

이건혁 경제부 기자
이건혁 경제부 기자
“사모펀드가 사모펀드답지 않게 팔린 게 문제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한 정책토론회에서 파생결합펀드(DLF) 등 잇단 사모펀드 사태의 원인을 이같이 진단했다.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이면서도 공모펀드에 따른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모펀드의 형식으로 팔려 소비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모펀드 의혹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가족 펀드’처럼 운영돼 주식 직접투자와 다를 바 없었음에도 사모펀드의 외피를 쓰고 공직자윤리법 적용을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사모펀드에는 공직자들의 편법 자산 증식 수단, 불완전판매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다시 찍혔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자본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5대 특별위원회 중 하나로 ‘자본시장활성화특위’를 만들고 사모펀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에 “역대 정권마다 ‘찬밥 취급’ 받던 자본시장이 드디어 인정을 받는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사이,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조 전 장관 가족의 투자 의혹, 파생결합펀드(DLF) 대량 손실,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 등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에서 강화 쪽으로 방향을 틀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나오고 있다.

○ 정부 규제 완화하자 시장 ‘쑥쑥’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자금을 특정 목적에 따라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돈을 넣는 공모펀드와 대비된다. 사모펀드는 현재 기업 경영권에 투자하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로 나뉜다. 정부는 이 같은 구분을 없애고 PEF는 기관 전용으로 운용토록 한다는 개편안을 내놨지만 아직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

최근 펀드 시장의 성장은 사모펀드가 이끄는 모양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사모펀드 설정액은 2014년 173조 원에서 올해 10월 말 398조5000억 원으로 약 130%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공모펀드는 204조3000억 원에서 249조7000억 원으로 약 2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모펀드의 급성장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며 은행 이자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주는 상품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예·적금 이자는 말할 것도 없고 증시 침체로 ‘국민 재테크 상품’인 공모펀드의 수익률도 기대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을 키워 보려는 정부의 의지도 컸다. 2015년 정부는 사모펀드 규제 체계를 이전보다 단순하게 바꾸고 개인투자자 기준 최소 가입 금액을 기존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낮췄다. 이에 기존의 투자자문사들은 헤지펀드 운용사로 변신해 시장에 진입했고 다양한 투자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중 뭉칫돈을 빨아들였다.

정부가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추진한 건 부동산에 쏠린 시중 자금을 금융권으로 유도하겠다는 목적이 컸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하는 ‘국민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77.8%로 나타났다. 일본(42.6%)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 정부는 부동산에 편중된 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면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돈줄이 마른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자산시장의 ‘머니 무브’를 일으켜 ‘돈맥경화’에 빠진 금융시장에 활력소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했다.

○ 코링크PE, DLF 손실 사태…연이은 사모펀드 사고

하지만 사모펀드가 일반투자자들에게 친숙해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 투자 금액이 줄었다고 해도 1억 원은 여전히 큰 금액이다. 공모펀드에 비해 투자 위험도 컸다. 사모펀드의 투자 대상도 소수의 자산가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선정됐다. 일반인은 정부가 규제를 풀든 말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조 전 장관과 그 가족의 투자 의혹으로 인해 사모펀드는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됐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구속)와 자녀 및 친척들은 이름조차 생소했던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에 100억1100만 원 투자를 약정했다. 이 중 14억1000만 원이 가로등 점멸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에 투자됐고, 그마저도 무자본 인수합병(M&A)과 내부자와의 결탁 등 불법 혐의가 불거지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무엇보다 정부 고위 공직자가 사모펀드라는 껍데기를 쓰고 주식에 직접 투자하거나 비상장사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는 허점이 드러났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사모펀드는 예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공직자들은 어떤 사모펀드에 투자할지, 펀드의 실제 투자처는 어디인지 등을 규제받지 않는다. 국내 증권사 사모펀드 전문 프라이빗뱅커(PB)는 “보통 자산가, 건물주, 유명 연예인 같은 이들이 돈을 싸들고 와 ‘사모펀드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익명성이 보장되는 투자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권에서 사모펀드 투자는 ‘권장 사항’이라고 했던 것도 논란이 됐다.

‘조국 사태’가 사모펀드에 대한 경보음을 울렸다면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이 판매한 해외 금리 연동형 DLF의 대규모 손실은 사모펀드를 향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독일 국채 10년물이나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 스와프(CMS)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이 상품은 시중은행에서 사모펀드 형태로 판매됐다. 일부 투자자가 100% 손실을 보는 등 피해 규모는 40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헤지펀드 업계 1위를 달리던 라임자산운용도 유동성 문제 등을 이유로 약 1조5000억 원에 대해 환매 중단을 발표했다. KB증권이 판매한 JB자산운용의 호주부동산펀드 계약 미이행 문제, 신한금융투자 등이 판매한 독일 부동산 펀드의 환매 연기 등 사모 형태로 판매된 금융상품들에서 잇따라 문제가 발생했다.

○ 규제 강화로 유턴하려는 정부

사모펀드에서 연이어 문제가 발생하자 금융감독당국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금융감독원은 개인 출자자 비중이 높은 PEF를 상대로 점검에 나설 것을 검토하고 있다. 조 전 장관 일가가 투자했던 코링크PE 같은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규제가 완화된 뒤 등록된 일부 PEF 운용사 중에는 투자 인력의 질이 낮거나 설립 후 투자 이행이 제대로 안 되는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 가족 펀드의 사례처럼 겉으로는 PEF이지만 속으로는 공직자들의 직접투자 회피, 무자본 M&A, 탈세 등 문제 소지가 있는 투자를 하고 있는지를 보겠다는 의도다.

헤지펀드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모험자본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했지만 단순히 운용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만 크게 성장했다”며 “규제를 보다 세밀하게 설계해야 모험자본 육성이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다”며 사모펀드의 규제 강화를 주문했다.

이에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에 변화 조짐을 나타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7일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펀드가 사모펀드답게 설정되고 판매되게 하고,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한층 두껍게 하는 방안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가 이번 주 중 발표할 사모펀드 관련 대책이 규제 완화보다는 강화에 보다 초점이 맞춰질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비록 여러 가지 사고가 있었지만 사모펀드의 규제 완화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모펀드 시장의 활성화로 부동산에만 쏠려 있던 시중 자금이 자본시장으로도 분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은행 대출을 버거워하던 중소 혁신기업들도 투자를 통해 필요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사모펀드 규제가 과거에 비해 완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강한 편이라고 지적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촘촘한 자산운용 규제와 운용사 등록 및 인가 절차 등을 봤을 때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의 규제 격차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사건들을 보면 사모펀드 시장 자체의 기능보다 판매 채널, 운용사의 역량 등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봐야 한다. 시장의 활력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적절한 감독 체계와 투자자 보호 조치를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하면 규제를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모펀드 시장 육성 정책이 정권이 바뀌었어도 유지됐던 건 그만큼 장점도 많고 글로벌 트렌드에도 맞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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