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눈썹 색깔[이준식의 한시 한 수]〈29〉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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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엔 어젯밤 촛불 붉게 타올랐고 새벽이면 안방으로 시부모께 인사갈 참. 화장 마치고 나직이 신랑에게 묻는 말, “제가 그린 눈썹 색깔이 유행에 맞을까요”. (洞房昨夜停紅燭, 待曉堂前拜舅姑, 粧罷低聲問夫壻, 畵眉深淺入時無.)―‘신부의 심정으로 장수부에게 드린다(閨意獻張水部·규의헌장수부)’(주경여·朱慶餘·당 중엽·생졸 미상)
 
신혼 첫 밤을 꼬박 지새운 신부는 새벽을 기다리며 시부모에게 인사드리러 갈 참이다. 눈썹 화장 하나까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은근슬쩍 남편에게 눈썹 색깔의 농담(濃淡)을 물어본다. 언뜻 보면 이 시는 수줍은 신부의 애교 섞인 사랑 노래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 속 대화는 신혼부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인은 당시 과거시험을 앞둔 선비였고 시를 받은 상대는 수부낭중(水部郎中)을 지내던 장적(張籍)이었으니 말이다. 과거를 보러 장안에 온 시인은 앞서 이미 장적에게 자신의 재능을 평가받으려고 시문 26편을 건네 둔 터였다. 시험이 임박해 오자 젊은 선비는 자못 초조하고 불안했다. “제가 그린 눈썹 색깔이 유행에 맞을까요”라는 말은 사실 자신의 시재(詩才)가 채점관의 마음에 들지를 우려한 조심스러운 탐문이다. 그런 심정을 시인은 갓 결혼한 신부가 시부모를 배알하는 장면에 빗댔는데 그 발상이 실로 기발하다. 후일 이 시는 아예 ‘시험을 앞두고 장수부에게 드린다(근시상장수부·近試上張水部)’라는 시제로도 불렸다.

‘신부’의 이 애처로운 심사에 장적은 어떻게 화답했을까. “월나라 미녀가 화장 마치고 맑은 호수에 등장한 셈/스스로 미모를 잘 알면서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고급 비단을 걸친 미녀라고 한들 누가 지금 예뻐하랴/마름 따며 부르는 그대의 노랫가락이 만금짜리인걸.” 염려 마시라, 그대는 분명 시부모의 눈에 쏙 들 거라는 극찬이다. 과연 그는 진사에 급제했고, 순탄한 관료 생활을 누리진 못했지만 장적의 시풍을 온전히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신부#주경여#규의헌장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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