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28〉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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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거북이 장수한대도/언젠가는 죽을 날 있고 전설의 뱀이 안개 타고 올라도/결국엔 흙먼지 되리. 늙은 천리마가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마음만은 천리를 내달리듯 열사는 말년이 되어도/그 웅지가 사라지지 않는 법. 목숨이 길고 짧은 건/하늘에만 달린 게 아닐지니 심신의 평온을 기른다면/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리라. 아, 너무나 흥겨워/이 마음을 노래하네. (神龜雖壽, 猶有竟時, (등,특)蛇乘霧, 終爲土灰. 老驥伏(력,역),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 盈縮之期, 不但在天, 養怡之福, 可得永年. 幸甚至哉, 歌以詠志.)―‘거북이 장수한대도(龜雖壽·구수수)’(조조·曹操·155∼220)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섬세한 서정을 담는 여느 한시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미사여구 같은 기름기도 쏙 빠져 있다. 신령한 거북이 3000년이나 장수했고, 전설의 뱀 등사((등,특)蛇)는 비룡과 함께 운무(雲霧)를 타고 천상을 노닐었다는 옛이야기를 떠올린 시인. 하지만 결코 그 신화가 부럽지 않다.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 또한 결국엔 흙먼지로 사그라지지 않았던가. 마구간에 엎드려 있을지라도 단번에 천리를 내달리는 준마의 꿈을 간직한 열사의 웅지는 쉽게 범접하지 못할 경이로움이다. 심신 수양을 통해 노익장을 다짐하는 그 기개는 생명에의 외경이기도 하다. 이 외경심에는 인명재천의 숙명론이 감당하지 못할 경건한 비장미가 담겨 있다. 영웅이 간직한 도량의 깊이와 넓이에는 역동적인 삶의 활력이 넘쳐난다. 그것은 “백년도 못 사는 인생/천년의 근심을 품고 살다니./낮은 짧고 괴로운 긴긴 밤/어찌 촛불 밝혀 놀지 않으랴”는 동시대 문인들의 보편적 허무의식을 극적으로 뒤집어 놓는다.

‘치세의 능신(能臣)이요, 난세의 간웅(奸雄)’으로 평가되기도 했던 조조. 소설 삼국연의에는 그가 음험하고 교활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정사 삼국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비범한 호걸’로 그의 지략과 능력을 높이 샀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구수수#조조#거북이 장수한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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