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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정치’의 종언[오늘과 내일/정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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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정치’의 종언[오늘과 내일/정연욱]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19-10-15 03:00수정 2019-10-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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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폐쇄적 사고
진영논리 버리고 다층적 민심에 주목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조국 법무장관이 임명된 지 35일 만에 물러났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조 장관 사퇴는 본인의 결심이었다”고 했지만 임면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거취를 갈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초 조국 임명을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기준은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대통령이 자기 발언을 뒤집고 조 장관 사표를 수리한 것은 민심의 거센 역풍에 더 이상 맞설 수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여권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의 방향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애써 폄하할 이유도 없다. 검찰 권력의 남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 개혁이 ‘조국 수호’와 연결되는 순간 순수성이 훼손됐다. 조국 일가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검찰 개혁은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검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이중 잣대와 언행 불일치도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현 정부 출범 후 특수부 검찰이 이전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집요하게 벌일 때 수사 과잉을 문제 삼은 여권 인사는 거의 없었다. 정권 초기 검찰이 스스로 특수부 기능 축소를 약속했지만 문재인 청와대는 이를 일축해 놓고 이제 와서 특수부 축소 폐지를 밀어붙인다. 정권의 힘이 있을 때 손을 놓았던 과제가 정권 실세인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개혁 과제’로 변신한 것이다. 이러니 검찰을 두고 적폐청산 과제가 끝났으니 정리한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 신세라는 얘기가 나돌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권 주류 진영의 ‘운동권 정치’는 민낯을 드러냈다. 먼저 유리한 방향의 대의와 명분으로 포장된 목표와 지향점에 초점을 맞췄다. 대의명분을 쥔 세력과 타격할 진영은 철저히 ‘선악’의 구도로 재편됐다. 이전 정권을 겨냥한 적폐청산을 시작으로 일본의 대한(對韓) 경제 규제로 인한 ‘반일-친일’ 구도도 그런 식이었다. 조국 거취와 관련된 이슈를 덮기 위해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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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영 대결 프레임을 작동하기 위해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이 가동됐다. ‘동지’인 조국 일가의 비리 의혹은 비대해진 검찰이라는 거악(巨惡)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어 버리는 식이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폐쇄적 사고다. 과거 군부정권에 맞서는 단선적 대결 구도에선 내부의 사소한 문제는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잣대로 지금의 정치 과정을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진영과 선악의 대결이 선명하던 시절에 회색지대는 변절과 비겁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대별, 계층별, 이념별 생각과 지향점이 복잡하다. 검찰 개혁을 지지하려 서울 서초동 집회에 참석했지만 조국 수호 구호엔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누가 봐도 분명한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를 보수-진보 진영 대결로 바꾸려 하니 역풍이 불었다. 친문 지지층만 ‘국민’이라고 본 여권 수뇌부는 이런 엄중한 민심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것이다. 지금은 회색지대가 중도층 민심의 바로미터다.

다층적인 국민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잣대로 정리될 수 없다. 여권은 20, 30년 전 운동권 정치의 폐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변의 민심과 항상 소통해야 한다. 정책 성과를 내야 하는 집권세력의 책임을 잊어버린 채 아직도 야당 시절 운동 패턴을 답습하려는가. 21대 총선이 이제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운동권 정치#조국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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