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리아 철군… 동맹의 시간은 짧아진다[오늘과 내일/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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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경찰’ 완전히 탈피… 동맹들이 싸워도 한쪽만 편든다

김영식 국제부장
김영식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그린라이트(승인)를 받은 터키는 9일 곧바로 시리아 쿠르드를 격퇴하는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전쟁으로도 바로 연결되는 파괴력을 과시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을 빼내 오는 과정은 좀 더 신중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의 얘기로만 보기 어려운 몇몇 대목들이 우리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선 동맹과의 신뢰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동 개입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라며 “미군 50명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이곳에 있던 미군 수는 얼마 안 되지만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막는 안전장치였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나오자마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터키군이 시리아에서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했다”고 선언하고 행동에 나섰다. 지상군 파병을 꺼리던 미국을 대신해 시리아쿠르드민병대(YPG)를 조직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벌이면서 1만1000여 명을 희생한 쿠르드족은 버림받았다. 물론 최근 러시아에 밀착해 미국의 신경을 긁었지만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 미국과 정식 동맹국 관계를 맺고 있다. 쿠르드는 국가는 아니지만 미국이 자신들의 독립을 지원해줄 것을 꿈꾸며 미국을 대신해 전쟁을 벌인 동맹군이었다. 격이 다르긴 하지만 두 동맹이 충돌할 때 미국은 한쪽의 손만 확실히 들어줄 수도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쿠르드를 옹호하는 언급을 하는 등 오락가락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시리아 철군 문제로 안보 사령탑들을 계속 쫓아낸 결과로도 보인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IS 제거 임무가 완료돼 시리아에서 완전히 철군하겠다”고 하면서부터 이른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은 무너졌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올해 8월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 지난달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시리아를 둘러싼 대통령과의 의견 충돌을 이유로 물러났다. 2016년 대선 공약임을 내세우며 반대자를 내쫓다 보니 이젠 백악관에는 ‘No(안 된다)’라고 말할 참모가 모두 사라진 듯하다. 그렇다 보니 외국 정상과의 통화 직후에 트윗이 올라오고,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작 이란, 러시아와 각을 세우면서도 이런 결정이 이란, 러시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미국 외교가 무너졌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대통령 의중을 잘 떠받드는 사람만 주변에 넘쳐나면 무리수도 늘어나는 법이다.

트럼프를 적극 지지했던 린지 그레이엄 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마저 거세게 반발하자 당황하는 모습도 드러났다. 급기야 한 기고문을 인용해 “그들(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우리(미국)를 돕지 않았다”고 했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변명인데, 변심할 때는 무슨 이유든 가져다 쓰고 밀어붙이는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이익이 있는 곳에서만, 이기기 위해서만 싸울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섬찟하다. 미국은 이젠 ‘세계의 경찰’이던 과거와 완전히 인연을 끊었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 말처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에 성공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이어 이를 운반할 잠수함마저 개발을 완료해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이 쉽게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한반도 문제도 순식간에 외면당할지 모를 일이다.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
#도널드 트럼프#그린라이트#터키#시리아 주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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