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취재팀’ 물갈이에 KBS 기자들 강력 반발…사회부장, 보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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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10일 2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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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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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산관리를 맡았던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 김모 씨와의 인터뷰를 기자들을 취재 현장에서 배제하고, 인터뷰 내용의 검찰 유출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히자 내부 비판이 커지고 있다.

보도본부 일부 간부와 일선 기자들이 “경영진의 대응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자 KBS기자협회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조 장관 보도 책임자인 성재호 KBS 사회부장은 이날 오전 사내게시판에 김 씨 인터뷰 전문을 공개하고 “저널리즘 원칙은 지켜야 한다”면서 “이젠 짐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며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성 부장은 KBS 기자가 검찰에 인터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김 씨가 장관 부인의 법 위반 정황을 처음 밝혔는데 허위가 아닌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취재 과정에서 검찰이 인터뷰한 사실 자체를 알아챘다고 해서 그걸 마치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통째로 검찰에 넘긴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억지고, ‘거짓선동’”이라고 했다.

KBS 공영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유시민 씨의 주장만 듣고 KBS 법조 출입기자들을 조사하고 새로운 취재팀을 만들겠다는 건 조국 장관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들리는 대목”이라며 “내부에서조차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발단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8일 오후 6시 개인 유튜브 방송에서 김 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유 이사장은 “KBS가 김 씨와 인터뷰하고, 보도를 하지 않았으며, KBS 기자들이 인터뷰 내용을 검찰에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KBS와의 인터뷰 직후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검사의 컴퓨터 화면에서 ‘KBS랑 인터뷰 했다던데 털어봐’라는 내용을 우연히 목격했다는 것을 근거로 한 말이다.

유튜브 ‘알릴레오’ 화면 캡처
유튜브 ‘알릴레오’ 화면 캡처
KBS는 9시 뉴스에서 “기사를 쓰기 전 김 씨의 증언이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는지 교차 검증하기 위해 일부 사실관계를 검찰에 재확인했을 뿐 인터뷰 내용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며 즉각 반박했다. 또 허위사실 유포로 유 이사장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러자 유 이사장은 9일 친여성향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내가 KBS 보도국장이나 사장이면 그렇게 서둘러 대응하지 않았다. 해명하더라도 신중하게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뭐냐”고 했다. 유 이사장은 또 유튜브 방송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공신력의 위기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면서 “KBS 안에서 내부 논의를 한다니,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고 응수했다. 양승동 KBS 사장을 거론하며 강경 대처를 주문한 것이다.

KBS는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9일 오후 외부 인사를 포함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조 장관 및 검찰 관련 보도를 위한 특별취재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당초 조 장관 관련 취재를 딤당하던 기자들과 논의 없이 발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회사 방침에 당사자인 법조팀과 동료 KBS 기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에 출입하는 A 기자는 사내 게시판에 인터뷰 섭외 경위부터 검찰 확인과 보도 이후 과정 등을 밝혔다. A 기자는 “공교롭게도 유 이사장이 이런저런 조치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내용이 회사 입장문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면서 “누군가 유 이사장에게 이런 조치를 미리 알려줬거나, 유 이사장과 상의를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KBS 법원출입 B 기자는 ‘보도본부장은 해명하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무적 판단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해온 훈련된 기자들을 한순간에 질 낮은 ‘기레기’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KBS기자협회는 10일 오후 운영위원회를 열어 이 사안을 긴급 안건으로 다뤄 논의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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