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정국이 비핵화 협상에 미칠 영향은? [김정안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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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SLBM발사 다음날인 2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에선 개천절 축하 참석 행사가 열렸습니다. 각국을 대표해 이날 자리한 외교 인사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단연코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였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비건 대표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조로 “어떤 질문도 답하지 않겠다”며 취재진을 전면 차단했습니다. 다음주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자칫 잘못된 메시지나 시그널을 북한에 주려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습니다.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하노이 노딜’ 이후 첫 만남격인 이번 실무협상에 비건 대표가 그러나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관련 확인을 요청하는 동아일보의 질의에 국무부는 “현재 공유 가능한 세부사안이 없다”고만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외교 소식통은 이런 기류를 전했습니다.

“비건 특별대표는 북한과의 첫날 예비회담에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으로 안다. 북한이 일방적인 주장만을 하기 위해 스웨덴까지 온 게 아닌지 사전 가늠하기 위해서다. 협상이 가능하다 판단될 경우 이후 실무협상에 비건 대표가 등판할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결국 실무협상이 시작되기 전 세부 기류 파악도 아직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자, 그만큼 가야할 길이 멀고도 험한 것이겠지요.

비건 특별대표와 최근 접촉한 또 다른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그동안 폼페이오 장관의 신임 하에 그는 북미간 실무협상을 정례화 시키는 방안을 고심해 왔다고 합니다. 실무협상이 일회성 ‘미디어 이벤트’에 그치는 것을 경계해 온 만큼 첫 회담은 급을 낮춰 한 뒤 차차 그 성과에 따라 급을 높여가는 방안 등을 검토해 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비건 특별대표의 ‘예비회담 후 실무협상 참석 여부 결정’ 계획도 이 같은 기류와 맥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이에 북한이 어느 정도 호응해 나올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예상보다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고 실무회담이 결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미간 협상의 틀 자체가 바로 깨지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오히려 또 한번의 정상 간 친서외교가 시작되고 올해 성탄 이전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탄핵 정국’입니다.

올 가을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고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인만큼 하원 차원에서의 탄핵안 가결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추가 폭로 등으로 정국이 요동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대북 강경책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분석입니다. 북한이 도발을 이어가고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자신의 치적으로 북한과의 협상 성과를 내세우지 못하게 됐다 판단할 경우 북한에 대한 태도를 전격 수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탄핵 위기에 놓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일보 자료사진
탄핵 위기에 놓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미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미 행정부 사정에 정통한 패트릭 크로닌 신미국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안보담당 선임국장은 2016년 인터뷰에서 예견한 바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북한이 배신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외교로 해결하려 했지만 북한은 나와 미국민을 속였다는 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이야기하면 전격적 대북 정책 방향 전환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최근 통화에서 이런 우려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탄핵 정국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는 가운데 북한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위협을 내세워 자신의 입지 강화에 나설 수도 있다. 실질적 안보위협에 대한 강경 대응은 미 의회에서도 별다른 저항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호전적 대북 기조로 회귀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그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걱정이다.”

물론 아직은 설익은 우려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마냥 낙관만 할 수 없는 건 북한 비핵화의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요. 이번 주말로 예정된 실무 협상은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김정안 채널A·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 수료)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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