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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DNA기술 아닌 법… ‘화성의 恨’ 더 빨리 풀 수 있었다”[파워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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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DNA기술 아닌 법… ‘화성의 恨’ 더 빨리 풀 수 있었다”[파워인터뷰]

수원=조건희 기자 입력 2019-10-01 03:00수정 2019-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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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분석 22년 땀 쏟은 임시근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
임시근 성균관대 대학원 과학수사학과 교수가 경기 수원시 실험실에서 유전자 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임 교수는 22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유전자 감정을 맡다가 올 3월 교수로 임용됐다. 미궁 속 범죄 현장의 유전자를 수없이 감정하며 그가 내린 결론은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수원=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난달 29일 임시근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50)의 연구실 책장엔 붉은 수채화 물감을 발라둔 듯한 메모지가 10여 장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물감이 아니라 혈액이었다. “아, 그건 제 피예요. 오래된 혈액의 유전자(DNA)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비교해보려고 사나흘마다 뽑아둔 건데….” 임 교수가 설명했다. 반평생을 DNA 감정에 바치고도 자기 피를 뽑아 ‘인체 실험’을 벌일 정도로 DNA 연구가 매력적인 걸까. 올 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떠나 대학 강단에 선 임 교수를 경기 수원시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언제부터 DNA를 다뤘나.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건 1991년이다. 원래 환경 분야를 연구하려고 했는데 박사 과정을 밟던 1995년 6월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의 신원을 DNA로 찾아내는 걸 보고 흥미가 생겼다. 환경연구소를 그만두고 국과수에 지원해 1997년 1월 채용됐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계기로 국과수에 채용된 강필원 선배(국과수 법유전자과장)가 ‘화성 세대’라면 나는 ‘삼풍백화점 세대’인 셈이다. 처음엔 무서웠다. 피 묻은 칼과 참혹한 시신을 매일 봐야 하니…. 지금은 내 피를 스스로 뽑아도 아무렇지 않다.”

―DNA로 화성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를 33년 만에 찾아낸 건 피해자 속옷에 남은 땀 세포 덕분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볼펜으로 종이에 작은 점을 하나 찍으며) 이 점이 보이나. 이게 혈흔이라면 이 안엔 백혈구 세포가 약 160개 들었을 양이다. 현재 기술로는 세포 15개면 DNA를 밝혀낼 수 있다. 이 점의 10분의 1 크기인 혈흔만 있어도 그 주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땀도 마찬가지다. 증거물이 잘 보존돼 있다면 세포 속 DNA를 얼마든지 밝혀낼 수 있다. 화성 사건의 9번째 피해자인 김모 양(당시 13세)의 경우 범인이 김 양의 속옷을 잡았을 때 그의 땀이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증거물도 어느 부위를 오려서 분석하느냐에 따라 DNA가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번엔 경찰이 증거물을 잘 보존했고, 국과수는 분석 부위를 정확히 선택한 덕에 DNA를 찾아낸 거다.”



―화성 사건 당시엔 경찰이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는데 이춘재는 O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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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처음 발생한 1986년은 증거물을 수집하는 절차도, 분석하는 기술도 설익은 시절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O형인 용의자의 체액이 A형인 피해자의 체액과 섞이면 A형으로만 보였다. 현행 DNA 분석 기법의 정확도는 화성 사건 당시의 100경(京) 배 이상이다.”

―화성 사건은 2006년 4월로 공소시효가 지났다. 증거물을 서둘러 재감정했으면 범인을 더 일찍 찾아낼 수 있었을까.

“DNA 분석 기법으로만 따지면 그때도 가능했다. 1997년 8월 KAL기 괌 추락사고 때 이미 우리나라의 DNA 분석 기술은 미국에 견줄 수준이었다.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를 생각해보라. 불에 탄 시신은 DNA 분석이 어려운데도 희생자의 신원을 다 찾아냈다. 문제는 기술력이 아니라 법이었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49)이 검거되자 강력범죄자의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런데 당시엔 관련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만약 그때 DB가 구축돼 1995년부터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의 DNA를 확보하고, 화성 사건의 증거물도 재감정했다면 그를 법정에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국은 이미 1995년부터 강력범죄자 DNA DB를 관리하고 있었다.”

―22년간 감정한 범행 현장의 DNA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뭔가.

“2009년 여대생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강호순(50) 사건의 감정을 맡았다. 강호순은 DNA를 아는 지능범이었다. 피해자의 모발이나 혈흔이 남아 있을까 봐 자기 차량을 불태울 정도로 치밀했다. 그때 내 책상 앞엔 포스트잇 4장이 붙어있었다. 2008년 11월 경기 수원시에서 실종된 김모 씨(당시 48세·여)를 비롯해 인근 지역에서 실종된 여성 4명의 DNA 식별번호였다. 강호순의 밝혀지지 않은 범행의 희생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포스트잇에 적어놓고 외우다시피 했다. 그런데 마침 강호순의 점퍼 소매에 묻어있던 깨알 크기의 혈흔을 분석해보니 DNA가 김 씨의 것과 같았다. 그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곧장 경찰에 알렸고, 이를 근거로 추궁한 결과 강호순이 여죄를 시인했다. DNA 감정가는 누구나 자기가 분석한 증거물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됐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유영철 때 좌절됐던 강력범죄자 DNA DB 구축 관련법도 2010년 7월 시행됐다.”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혈흔 분석 시약을 국산화한 일화가 유명하다.

“범행 현장에서 혈흔을 찾아낼 때 쓰는 루미놀 시약을 전량 수입 물량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입품은 1L당 14만 원 정도로 비싸서 수사 일선에서 쓰기가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화학을 전공한 임승 광주지방경찰청 검시관과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 개발에 나섰다. 제 기능을 하면서도 DNA를 오염시키지 않는 조합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본업인 감정 업무와 병행하려니 8년이 걸렸다. 결국 2017년 개발에 성공해 특허를 냈다. 지금은 국제특허도 출원 중이다.”

―강력범죄자가 아닌 성인 실종자의 DNA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는데….

“매년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자가 200여 명씩 국과수에 온다. 소지품 등 신원을 추정할 근거가 없어 ‘신원불상’으로 DNA가 기록된다.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그런데 현행법상 아동이 아닌 성인 실종자는 ‘가출인’으로 분류돼 그 DNA를 보관할 법적 근거가 없다. 성인 실종자는 숨진 후에도 가족이 그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이 경찰에 애원하면 알음알음으로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보내지만 이는 제대로 된 DB가 아니다. 성인 실종자가 범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꼭 제대로 된 DB를 구축해야 한다. 국회에 관련법도 발의돼 있는데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국과수를 떠나 교수직을 택한 이유가 뭔가.

“우리나라의 DNA 감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뒷받침하고 유지하려면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아직 국내 대학 학부엔 과학수사학과가 없고 일반 대학원에도 성균관대가 유일하다. 국과수에 입사하는 직원 중에도 관련 교육을 받고 들어온 직원이 없었다. 또 하나는 연구다. 법과학은 생물학뿐 아니라 의학과 광학, 기계공학 등 많은 학문과 함께 발전하는 ‘종합예술’과 같은 분야다. 성폭행 용의자의 정액을 검사하는 시약도 원래는 전립샘 환자를 검사하려고 만든 거였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교류하면서 연구에 파고들려면 대학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DNA 분석 기법이 얼마나 발전할까.

“DNA 분석 기술은 1990년대 중반에 ‘짧은연쇄반복(STR)’ 기법이 도입되면서 한 차례 크게 발전했다. 화성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를 밝혀낸 기법의 원형이다. 지금은 ‘제2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또다시 기술력이 급격히 도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DNA만으로 주인의 인종과 나이, 안구 색상 등을 파악하는 피노타이핑(phenotyping) 기법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DNA를 통해 범죄 용의자 범위를 상당히 좁힐 수 있다. 미국에선 이미 상용화돼서 민간 업체가 한 건당 약 400만 원을 받고 서비스해 주고 있다. 또, 현행 기법으로는 2명 이상의 혈액이 섞인 경우 DNA를 특정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하면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의 DNA 관리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나.

“우리 정부는 대검찰청과 경찰청, 해양경찰청, 국방부 등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DNA를 따로 관리한다. 총괄하는 거버넌스도 없고 미래 전략도 없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이 DNA 관리를 총괄하고 법무부 산하 국립사법연구소(NIJ)가 DNA 감식을 포함한 법과학 관련 연구의 연구비를 관리하고 연구과제 선정도 한다. 연구비 자체도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은 법과학 예산을 다 합해도 연 70억∼80억 원 정도인데 미국은 100배가 넘는다. 그러니 신기술은 다 미국에서 나온다.”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실을 떠나려는 기자의 눈에 벽에 붙은 메모가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 광원(플래시)을 활용한 혈흔 감정’ 등 앞으로 연구할 과제의 목록을 30여 개 빼곡하게 적어둔 것이었다. 그 옆엔 임 교수가 직접 쓴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임 교수는 “저는 정말 이렇게 생각해요. 오래된 미제 사건도, 새로운 DNA 분석 기법 개발도 포기하지 않으면 풀릴 거라고요”라고 말했다.

○ 임시근 교수 프로필

△1991년 고려대 생물학과 졸업
△1995년 고려대 석사(미생물학)
△1997∼2019년 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신원확인정보관리실장, 유전자분석실장
△2001년 고려대 박사(미생물학)
△2017년∼현재 한국유전학회 이사
△2019년∼현재 한국법과학회 이사
△2019년 3월∼현재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
 
수원=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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