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개정된 학폭법 시행…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장 자체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8일 2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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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기윤 군과 석현 군(모두 가명)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팔뚝을 맞는 게임을 했다. 수차례 이긴 기윤 군이 석현 군의 팔을 손으로 세게 때렸다. 참다못한 석현 군이 그만하라고 하자 기윤 군은 “남자답지 못하게 참을성이 없다. 니 어미가 엄살이 심해 너도 그러느냐”고 막말을 했다.

이날 석현 군의 엄마는 멍든 아들의 팔뚝 사진을 찍어 담임교사에게 보내면서 기윤 군의 막말까지 포함해 ‘학교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멍은 약 등을 바르자 하루 만에 사라졌다. 이튿날 석현 군 엄마는 학교에 “처벌은 바라지 않지만 기윤 군 측이 사과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학교에서 잘 지도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현 군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기윤 군은 ‘서면 사과’ 처분을 받았다. 학교폭력이 신고되면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고 가해자에게 처분을 내려야 하는 학교폭력예방법(학폭법)에 따른 것이었다. 9가지 처분 가운데 가장 가벼운 1호 처분이었지만 두 친구 사이는 어색해졌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인 ‘푸른나무 청예단’에 올 4월 접수된 학교폭력사건의 한 사례다. 이 사건이 만약 이달에 일어났다면 학폭위가 열리지 않았을 수 있었다. 이달 1일부터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폭위로 바로 가지 않고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도록 개정 학폭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 학폭법은 학교폭력사건을 무조건 학폭위로 보내지 않고 학교장 재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먼저 전담기구의 조사 결과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조건은 △2주 이상의 신체적·정신적 치료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진술·자료 제공에 대한 보복 행위가 아닌 경우 등이다. 이어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학폭위 개최를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 동의를 하면 학폭위는 열리지 않는다.

학폭위가 열리지 않고 사건이 종결됐어도 이후 사건 은폐나 축소가 확인되거나 피해자 측이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면 학폭위를 열게 돼 있다. 가해 학생이 여러 명일 경우 그중 한 명이라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학폭위가 열린다.

개정되기 이전의 학폭법은 가해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친구 간의 사소한 다툼도 학폭위로 가는 바람에 정작 필요한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관계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가해자에 대한 처분 사항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기 때문에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일도 잦았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잘 정착하려면 학교가 피해 학생과 보호자에게 학교장 자체 해결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피해 학생이 ‘괜히 자체 해결을 택했다’고 후회하지 않고 학교에 신뢰를 느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승혜 푸른나무 청예단 청소년사업상담본부장은 “학교가 가해 학생의 사과와 피해 학생의 용서를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이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재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가해 학생이 1호, 2호(접촉·협박·보복 금지), 3호(교내봉사) 처분을 받고 충실히 이행하면 학생부 기재를 유보하기로 했다. 시행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가해 학생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고 법적 분쟁을 완화해 관계 회복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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