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행태에 격노한 文…‘정의·공정’과 ‘檢개혁’ 사이 조국 고심

  • 뉴시스
  • 입력 2019년 9월 8일 20시 36분


코멘트

조국 수사, 정치중립 선 넘은 검찰 '조직적 저항' 시각
"문 대통령, 검찰 압수수색 보고받고 불 같이 화내"
文정부 핵심가치 '공정·정의' 놓칠 수 없다는 점도 고심
최우선 국정 과제 2가지 가운데 택일 요구받는 형국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장관 임명 여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 배경에는 크게 2가지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검찰 수사를 조직적 저항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 여부와 장관 임명 강행 시 감수해야 할 여론에 대한 부담 사이에서 쉽사리 어느 한쪽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 악화에 대한 근본 배경이 ‘정의·공정’이라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철학이 훼손됐다는 국민 상실감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문 대통령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촛불정신의 바탕 위에 세워진 현 정부의 ‘정의·공정’이라는 핵심 가치와 참여정부 이후 10년을 미뤄온 ‘검찰개혁’이라는 최우선 국정 과제 2가지 가운데 택일을 요구받고 있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이 법적으로 임명 가능한 시일을 이틀이나 넘기면서까지 고민하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임명을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어제(7일)부터 시작됐고, 그렇기 때문에 어제부터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닷새의 기간을 주고 국회에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함에 따라 송부 마감시한은 6일 자정까지였고, 이틀이 지난 시점까지 임명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도 국무위원의 임명을 보류했던 사례는 2017년 7월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후 조 후보자가 처음이다.

당시엔 야당이 송 후보자의 임명과 정부의 당해 년도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 통과를 연계하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을 찾아 협상의 공간을 위해 2~3일 간 임명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 원내대표의 요청을 수용해 청문보고서 송부 만료시한(7월10일) 3일 후에 임명을 재가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야당이 조 후보자의 무조건적인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과 직접 비교가 어렵다는 평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8일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피의자 조국을 장관에 앉히는 것은 그 자체로 법치에 대한 도전”이라며 “임명되는 순간 특검과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압박했다.

검찰이 지난 6일 인사청문회 도중 조 후보자 아내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이후 청와대 기류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감지된다. “큰 틀에서 임명 기류의 변화가 없다”던 입장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에서 적잖은 온도 차가 느껴진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날 노영민 비서실장 주재의 정례 현안점검회의에서 임명을 강행했을 경우를 비롯한 다양한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득실과 관련해 갑론을박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실장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주요 참모 중심의 별도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모든 결정은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에 달려있다면서도 그대로 임명을 강행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아직은 우세한 분위기다.

검찰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압수수색에 나선 것과 조 후보자의 아내 정경심 교수를 청문회 도중 사문서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한 것을 두고 검찰 개혁에 대한 조직적 반발로 보고 역설적으로 조 후보자의 임명이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문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를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보고 있지만 검찰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을 분명히 넘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국민들은 검찰이 그동안 보여 왔던 ‘정치검찰’의 행태를 청산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통제’를 받으면서 국민들을 오히려 주인으로 받드는 그런 검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당부한 바 있다.

또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그런 조직의 논리보다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며 검찰 내부 논리에 앞서 정부의 검찰 개혁 작업에 따라주기 바란다는 뜻도 함께 전달했다.

검찰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 위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눈치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엄정한 자세를 견지해 달라는 것이 문 대통령 주문의 요지였다.

하지만 검찰이 문 대통령의 이러한 주문과 달리 조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수사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은 개혁 작업을 무마하기 위한 검찰 특유의 조직적 저항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지난 6일 오후 한 참모가 페이스북에 ‘미쳐 날뛰는 늑대’, ‘검란(檢亂)’이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한 것도 청와대 내부에 조성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자기들이 정치를 하겠다는 식으로 덤비는 것은 검찰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고 공개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검찰의 1차 압수수색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격노’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당시 압수수색 소식을 보고받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줬지만 거꾸로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 됐다며 안타까움을 밝힌 바 있다.

이후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뤘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는 참여정부가 간과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반성하는 대목을 서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우리가 정치적 중립성, 이 부분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정권이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맞춰 장악하려는 시도만 버린다면 검찰의 민주화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절로 따라온다고 봤다”고 적었다.

2011년 12월7일 ‘검찰을 생각한다’ 출판기념 토크콘서트에서 문 대통령은 “검찰은 무리한 수사와 기소에 대해서 결과와 상관 없이 인사를 통해서 보상을 받는다. 그런 걸 통해서 검찰 내부에서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서 줄서기 풍토가 생긴다”며 “그래서 정치 줄서기 인사에 대한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경험했던 참모들은 이러한 맥락을 잘 알고 있기에 조 후보자의 임명이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현 정부가 내세운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시각도 팽팽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잘못하면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때 2030 세대들이 평화라는 대승적 가치보다는 자신들이 피부로 느끼는 공정성 훼손을 더 크게 느끼며 등을 돌렸던 사례를 답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정치 중립성을 넘어선 검찰의 행태 차원에서의 문제 인식과 정의와 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 감정, 특히 2030세대들의 이반 현상이라는 현실적 문제 두 가지 사이에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