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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말고 입으세요[간호섭의 패션 談談]〈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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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말고 입으세요[간호섭의 패션 談談]〈25〉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입력 2019-09-07 03:00수정 2019-09-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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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문자(文字)는 말함과 동시에 사라지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인류의 발명품입니다.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기록이 가능해졌고, 지식의 전달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자는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로마자와 한자, 아랍 문자들은 다수의 국가에서 쓰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한글을 포함해 일본, 태국 문자처럼 한 국가에서만 주로 쓰이는 문자도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쓰는 문자라 할지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저 ‘까막눈’이 되어 버립니다. 의미를 알수 없는 그저 신기한 형태의 모양이지요.

어쩔 때는 새로운 문자에 기존 문자의 새로운 형태에 호기심과 더불어 신기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합니다. 어렸을 적 점집에 써놓은 부적들이 참으로 신기해 보였습니다. 무섭기도 했죠. 시뻘건 물감으로 휘갈기듯 써내려간 문자가, 아니 그 형태가 도깨비 뿔 같아 보이기도 해서요.


그래서 문자는 패션과 접목되어서 생각지 못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키기도 하죠. 특히 현대에 와서 디자이너들이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고 그 정체성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문자는 그림처럼 활용되었습니다. 미니멀하고 절제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패션디자이너는 굵고 직선적인 느낌의 문자를 사용하여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고전적이고 우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패션디자이너는 손 글씨 느낌의 문자를 사용하여 브랜드 로고를 만들어 간판과 옷 안에 숨겨진 라벨에 사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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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젠가부터 숨기는 것이 미덕이었던 로고들이 마구 옷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브랜드를 입는 것이 본인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시대였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문자는 곧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가슴팍과 등판에 큼지막하게 팍팍 박힌 문자들은 ‘문자 패션’의 서막을 열었죠. 흔하디흔한 티셔츠도 문자만 새기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럭셔리 패션으로 탄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전 세계와 소통하는 지금, 한글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해외의 유명 팝스타가 ‘호남향우회’라고 써 있는 티셔츠를 입은 파파라치 컷이 화제가 됐습니다. 물론 그는 광주나 목포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마 문자의 의미보다는 문자의 형태와 색상이 예뻐서 입지 않았을까요? 이번 여름에는 한글을 표현도구로 한 패션아트전도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서 깊은 패션 뮤지엄인 팔라초 모란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총 6개국 73명의 패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전시는 문자 패션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패션시장에서 어쩌면 문자 패션은 동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패션 메신저일 수도 있고 보편화되는 대중적 패션에 새로운 개성을 더하는 탈출구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패션산업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경제적으로 매출을 창출하기도 합니다. 조상님들께서 만들어주신 문자 덕분에 후손들이 큰 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문자#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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